[부동산뱅크 2009/10/23 - 조회:4892]
늦은 저녁 집주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얼굴과 등골이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직관적으로 전세계약에 관련된 느낌이 들었다. 전세기간 만료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전세금을 올려주던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던지 선택하라는 말이었다. 전세금을 2,000만 원이나 올려달라니……
난감했다. 전세기간 만료일이 가까워 왔지만 전세금을 올려줄 여유가 없었다. 지난달 어머님 수술비를 내고 난 후 집안에 여윳돈이 없었다. 전세값은 계속 올라 1억 2,000만 원 정도로 집을 살 곳은 없었다.
단독주택지로 가더라도 4식구가 살만한 집들은 모두 1억 5,000만 원을 넘었다. 작은 오피스텔이나 소형 아파트로 옮기려 생각도 해봤다. 오피스텔은 주거용이 아니라 들어가서 살기가 힘들었고, 저렴한 소형아파트는 너무 좁았다.
그래서 그는 친구에게 돈을 2,000만 원 빌려보기로 했다. 선술집에서 만난 친구. 잘나가는 대기업 임원인 그 친구라면 나에게 돈을 쉽게 빌려줄 거라고 생각했다.
오판이었다. 자신도 요즘 자리가 위태롭다느니 아이들이 유학을 가서 돈 들어갈 때가 많다느니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당했다.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친구가 거절할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한번 부탁해 보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의지해 보고도 싶었다. 이제 어쩌지?
친구는 전세대출을 받아보라고 권한다. 그래서 말했다. 이미 받은 상태라고…… 처량한 듯 술잔을 기울였고, 잔뜩 취했다. 그후에 주고받은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마셨다.
다음날, 곯아 떨어진 김과장을 깨우는 건 어린 딸 윤서였다. “아빠 전화받어”
숙취가 올라왔다. 참고 전화를 받았다.
어제 그 친구였다. 야박한 놈. 단돈 2,000만 원도 꿔주지 않은 놈. 마음 속으로만 외쳤다. “왜 내가 어제 뭐 실수라도 한 거 있어?”
수화기에서 들려 왔다 “나와 해장하게”
기뻤다. 돈을 빌려주려나 보다. 김과장은 샤워를 했다. 아주 깔끔하게 했다.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남에게 돈을 빌릴 때는 단정하고 깨끗하게 가야 상대가 믿고 빌려준다’ 이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한 번 들은 것 같았다. 그래서 깨끗이 씻었다.
약속시간보다 20분 일찍 왔는데도 친구는 나와있었다. 너무 기대됐다. 그리고 기뻤다. 역시 넌 내 친구다. 이렇게 생각했지만 친구에겐 돈이 없었다.
☞ 제3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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