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핫 플레이스 해방촌, 개성 살리고 활력 넘치게
[연합뉴스 2016/11/29 - 조회:1440]
젊은 예술인·토박이·외국인 주민 정 나누는 마을문화 창조
(서울=연합뉴스) 최윤정 기자 = 용산구 해방촌오거리에 서서 휙 둘러보면 어리둥절해진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동네가 있다니. 고개만 들면 남산이 보이고 면 단위 어딘가 마을 풍경이 떠오른다. 수십 년 전에 흔하던 주택가 같기도 하다. 그런 이곳이 젊은 예술인들이 둥지를 틀고 급변하며 요즘 '핫 플레이스'가 됐다.
서울시도 변화에 동참해 해방촌 도시재생 사업을 시작했다. 목표는 마을 개성은 살리고 주민들이 정을 나누며 사는 마을문화를 재창조하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 것도 주요 과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한 구도심이 다시 번성해 사람이 몰려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현상을 뜻한다.
◇ 뜨는 동네 해방촌…마을 자체가 예술 = 구멍 난 슬레이트 지붕 아래 볕이 들지 않는 시장, 차 한 대 지날 땐 급히 비켜야 하는 좁은 언덕배기 골목, 지붕이 허물어진 빈집. 이것들을 모아 공식에 넣으면 뚝딱 떨어지는 답은 쇠락한 분위기다. 그러나 공식을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이 동네가 예술이다.
젊은 예술인들의 공방과 인테리어가 세련된 카페, 유명 방송인 노홍철씨의 책방, 지역 활동가의 새로운 시도가 담긴 공간들이 개발이 멈춘 동네에 활기를 준다.
해방촌 오거리에서 해방촌 성당까지 속칭 '명동길'(소월로20길, 270ｍ)에서는 해방촌 에너지가 느껴진다.
양쪽으로 상점이 빼곡한 좁은 길을 걷다 보면 최신 유행 스타일 '패션 피플'과 홍대 주변의 비싼 임대료에 밀려 해방촌에 자리 잡은 예술인들이 지나간다. 그 사이로 정육점 단골손님과 철물점 주인이 보이고 우리말로 재잘재잘 떠드는 외국인 초등학생들과 보성여중고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외국인 영어 강사들이나 지역 운동가들도 해방촌 사람들이다.
길 중간 용산해방촌나눔의집에서는 문을 활짝 열고 필리핀 출신 주민들이 만든 음식을 한 상 가득 차리기도 했다. 장 보러 나왔던 주민들이 낯선 음식을 맛보러 들렀다간 이웃이 돼서 돌아간다. 한 켠에선 청년들이 지역에서 생산한 꿀을 판다.
같은 시공간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질적인 사람들이 공존하며 뿜어내는 매력, 그것이 해방촌의 정체성이다.
◇ 피난민들 모여 살다 니트 산업 중심지로 =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일대(33만 2천㎡) 해방촌은 해방 후 실향민들이 모여 살 때 지금 이름을 얻었다. 한국전쟁 직후 암담한 사회상을 그린 소설 오발탄에서 주인공이 사는 빈민촌이기도 했다.
60∼70년대에 니트 산업이 뜨며 해방촌도 번창했다. 해방촌 건물 지하마다 니트 제작 공장이 있었고 전국에서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몰려와 인구는 한때 2만명이 넘었다.
지금은 1만 3천명으로 쪼그라들었고, 65세 이상 인구가 15%가 넘는 등 고령화도 심하다.
해방촌오거리 신흥시장 모습이 해방촌 흥망성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60년대 초 하꼬방(판잣집)을 허물고 시멘트 건물을 여러 채 지은 뒤 지붕을 이어붙여 만든 신흥시장은 한 때 쇼핑 명소였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대형 마트 등장까지 겹치며 어두침침한 슬럼으로 전락했다.
해방촌도 2000년대 부동산 가격이 들썩거린 적이 있지만 개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남산에서 한강까지 녹지축을 연결한다는 '남산 그린웨이' 사업으로 가격이 뛰며 토지·건물주 손바뀜만 일어났을 뿐이다.
아파트 전성시대에 소외된 해방촌은 외국인들과 예술인들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용산미군기지, 이태원과 가깝고 임대료가 싸다 보니 외국인 비율이 10%까지 올라갔다. 2∼3년 전부터는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젊은 예술인들이 찾아와 공방이 30여 개에 달한다.
◇ 서울형 도시재생 성공할까…4∼5년간 100억 지원 = 해방촌 도시재생 활성화 계획이 조만간 확정될 예정이다.
신흥시장 활성화와 공방·니트산업 지원, 해방촌 길·안전한 생활환경·녹색마을·주민공동이용시설 등 조성, 공동체 규약 마련 등이 주 내용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와 국토부가 4∼5년간 최소 100억원을 지원한다.
신흥시장은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는 등 환경을 개선해 아트마켓으로 만든다. 관광객들이 찾아오도록 경리단길과 이어지는 해방촌 테마가로와 남산가는 골목길, 108계단에서 신흥시장 거쳐 남산으로 연결되는 역사문화탐방로 등을 만든다.
나이 많은 지역 주민과 젊은 문화 예술인, 외국인들이 평화롭게 살려면 마을 규칙도 필수다.
발전방안 수립은 2014년 도시재생 실행방안 용역과 함께 본격 시작됐다. 작년 3월 말까지 주민 의견 수렴을 위한 용산구 설명회, 직능단체 간담회, 주민설명회 등이 열렸다.
도시재생 사업 현장 거점인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오픈했다. 작년 3월에는 도시재생 주민협의체도 출범했다. 세입자, 피고용인, 외국인, 학생 등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주민협의체에는 9월 말 현재 583명이 가입했다.
올해 7월에는 서울시와 용산구, 해방촌 주민협의체, 동국대 간에 해방촌 도시재생 활성화를 위한 공동협력 협약이 체결됐다.
◇ 젠트리피케이션 막고 지역은 활기차게 = 해방촌의 가장 큰 이슈는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주민이나 상인들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이미 홍대와 서촌, 경리단길 등에 이어 자본이 해방촌으로도 흘러들어오고 있다. 동네마다 부동산에 '카페하기 좋은 곳' 등 설명이 달린 매물이 잔뜩 붙어 있다. 인터넷에는 연예인 누가 샀다더라며 부추기는 말들이 떠돈다.
동네는 좋아지더라도 임대료가 올라 쫓겨날까 봐 주민들은 불안하다. 이에 대응해 서울시 주도로 신흥시장 환경개선을 지원받는 대신 소유주는 임대료를 6년간 물가상승률 수준에서 억제하는 내용의 상생협약이 체결됐다. 지난한 설득 노력 끝에 소유주 44명이 전원 동의했다.
이미 해방촌은 공동체의 힘이 나타나고 있다. 노홍철씨는 최근 서점 오픈까지 이야기를 담은 책에서 지역 젊은 예술인들과 주민, 상인들과 어울리며 공동체를 경험하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풀어놓기도 했다. 예술인들과 상인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해방촌 페스티벌이 대대적으로 열린다. 된장, 고추장을 직접 담가 판매하는 협동조합도 있다.
해방촌 재생을 총괄하는 한광야 동국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는 29일 "남산 아래 첫 마을 해방촌은 보행이 우선되는 마을이면 좋겠다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활성화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mercie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1/29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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