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수제화 1번지 성수, 이야기 가득한 색깔있는 마을로
[연합뉴스 2016/12/01 - 조회:1590]
마을탐방·잡지발간으로 동네 성찰 기회…공예·벽화로 새 단장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성수동은 대한민국 제화 산업을 떠받쳤던 '수제화 1번지'였다. 지금은 수입 브랜드와 중국산에 밀려 옛 명성은 빛이 바랬지만, 아직도 곳곳에 자리한 수제화 전문점과 신발 아웃렛 등은 이곳이 바로 성수동임을 외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자태를 뽐내는 지하철 2호선 지상 구간이 먼저 떠오를 수도 있다. 신설동으로 향하는 2호선 성수지선과 순환선 본선이 교각에서 입을 맞추는 성수역은 '회색빛' 고도성장을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이제 성수동은 다양한 빛깔 사람들이 모여 함께 희망을 꿈꾸는 마을로 변화하고 있다.
◇ 제화산업 중심지, 시대의 파고에 힘을 잃다 = 성수동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제화산업은 그 뿌리가 1910년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 기술 전파를 계기로 제화산업이 발전했다. 한국전쟁 후에는 미군 주둔지였던 뚝섬 일대에서 버려진 전투화로 구두를 만들면서 제화산업이 꽃을 피웠다.
1990년대에는 왕십리에서 건국대까지 800∼900곳에 이르는 구두공장이 모여 있었다고 한다.
1964년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토착 산업인 제화산업이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지만, 2000년 이후 경기 침체와 경쟁력 약화 등을 이유로 힘을 잃어가고 있다.
이 지역 인구는 올해 2011년 대비 18.13%나 줄었다. 게다가 사용 연한 2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이 84.6%에 이를 정도로 주거 환경이 노후화했다.
공장과 주민 사이의 갈등, 열악한 영세작업 환경, 쉴 곳 없는 생활공간, 부족한 기반시설 등이 맞물려 삶과 일의 만족을 위한 '무언가'가 절실히 요구됐다.
◇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곳 = 성수동은 집과 공장이 한 동네에 뒤섞인 독특한 지역이다. 몇 년 전부터 IT산업·사회적 경제조직·문화예술 단체 등 새로운 피가 수혈되면서 활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곳을 채운 사람들 역시 면면이 다양하다. 주민, 토착 산업 종사자, 문화예술 종사자, 서울숲 방문객 등 다양한 빛깔의 사람들이 모두 성수의 주인이다.
재개발과 달리 '사람 사는 동네'를 남기는 방식의 도시재생은 성수동 사람들에게도 마을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기회를 줬다.
마을탐방, 워크숍, 아카데미 등 함께하는 활동으로 그동안 몰랐던 마을 이모저모를 들여다봤고, 열띤 공부와 토론을 통해 지역이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도시재생으로 성수동 마을 그 자체뿐 아니라 이를 이루는 주민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바탕에는 지역의 역사라는 든든한 '뿌리'와 사회적 기업이라는 '가지'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서울의 요충지로 역사가 깊다.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는 전차와 비슷한 '기동차길'이라는 교통수단이 왕십리∼뚝섬 구간을 운행했다. 지하철 2호선 지상 구간이 개통하기 반세기 전에 이미 이 구간에서 대중교통수단이 달린 셈이다.
기동차길은 1932년에는 동대문∼왕십리 구간이 연장돼 동대문과 뚝섬 사이를 오갔다.
현재 이 궤도는 철거된 상태이지만, 당시 기반 도로는 그대로 남아 있어 앞으로 역사탐방길로 꾸며질 예정이다.
2010년 이후 사회적 기업이 속속 성수동에 모여들어 이곳은 '소셜 밸리'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2012∼2013년 서울그린트러스트, 더페어스토리 등이 성수동에 터를 잡은 이래 현재 30여 개의 사회적 기업이 서울숲을 뒤로하고 모여 있다. 이외에도 카페, 예술가, 디자이너 등이 모여들면서 성수동은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중이다.
서울시는 1일 "나이와 입장을 떠나 논의할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지자 모두 적극적인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며 "도시재생이 진행될수록 변화되고 있다기보다는 성수동의 잠재력이 드러나는 것임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 회색빛 성수동의 변신…이야기를 입다 = 성수동은 주민의 땀과 노력으로 회색빛에서 형형색색 색깔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성수동 골목길에는 빛으로 새겨진 '글.빛.길'과 동네 할머니들이 뜨개질로 꾸민 '떴다 할매 골목길'이 있다. 동네 주민이 공예 타일로 꾸민 '도시의 꿈을 나르는 공예 쉼터'도 있다. 비가 오면 모습을 드러내는 '비 오는 날의 성수동' 바닥 조형물도 갖췄다.
아이들 등하굣길에 있던 벽화는 주민이 직접 회의를 거쳐 '함께 웃는 벽화 그리기'로 바꿨다. 오래된 수제화 산업 전통을 살려 신발 모양으로 꾸민 '주민 게시판 갤러리'도 만들어졌다.
할머니의 이야기, 비 오는 날의 성수동, 멋들어진 글귀, 수제화 산업 등 성수동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골목마다 스며들었다.
이 밖에도 공모사업을 통해 '다독다독 잡지책', '기자단 리플렛', '성수애(愛)서' 등 다양한 책자가 제작돼 동네 소식을 속속들이 전했다. '스토리 마을탐방 성수', '엄마의 재봉 소리', '응답하라 우리 동네 놀이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 성수동, 젠트리피케이션 넘어 희망의 마을로 = 성수 주민들은 도시재생의 목표로 '희망을 만드는 장인의 마을 성수'를 제시한다. 오래된 산업 종사자의 마을이란 뜻이기도 하고, 마을 역사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와 엄마의 마을이란 뜻이기도 하다.
산업 육성과 관광객 유치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3월 지역 특성을 살려 성수동을 '수제화 특화지구'로 지정했다.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은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시는 '구두 테마역사'를 만들고 공동 판매장도 만들었다.
수제화 제조 관련 우수한 인력을 선발하고, 교육과 창·취업을 연계해 지원할 예정이다. 중국산 저가제품과 가격 경쟁에 밀린 영세업체를 돕고자 생산-유통-관광 활성화를 견인할 공공 플랫폼 인프라도 구축하기로 했다.
성수동도 발전과 함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안고 있다. 문 닫은 공장 건물에 카페가 들어서며 성수동은 새로운 명성을 떨치고 있다.
산업화 시기 쉴 새 없이 돌아갔을 공장 기계는 멈췄지만, 대신 향긋한 커피 내음이 들어선 카페로 젊은이들이 찾아오고 있다. 유명 연예인들이 건물을 매입했다는 소식도 계속 들려온다.
홍대 앞 등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성동구는 서울숲길 일대 대형 프랜차이즈 등 입점을 제한하는 등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주민의 삶을 더욱 즐겁고 풍요롭게 만들려면 지속적인 주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며 "삶의 주인이자 실천가, 그리고 훌륭한 '크리에이터'(creater)인 성수동 주민이 어떤 변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남진 성수도시재생 총괄 계획가 겸 성수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성수동은 주거지일 뿐 아니라 지역의 일터이기도 한 곳"이라며 "정체된 성수 고가나 수제화 거리가 잘 재생돼 일하는 사람들이 더욱 즐거운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구두 장인이나 사회적 경제조직 등 성수동에 모인 이들이 지역 발전에 함께할 수 있으면 한다"고 말했다.
tsl@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12/01 09: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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