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보포털에서 거래포털로!

바로 밑의 글을 올리고 퇴근한 다음에 부동산 한 군데 들르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보면서 집 살 때 고려했었던 여러 단지들을 둘러보고 들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생각이 많아져서 한 번 더 글을 올리게 되는군요.

"내집마련"이라는 게시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내 집'이 지니는 의미가 크다는 사실을 반증합니다. 이 게시판에 들어오시는 분은 폭등론자이든 폭락론자이든 결국은 내 집 장만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들어오시는 무주택자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바람 잡으려고 들어오는 업자분들이나 땡깡 부리려는 일명 퐁나기 분들도 몇몇 계시기야 하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게시판에 들어오는 분들이 내 집이라는 것에 관심들이 다 있으시고, 지금 사든 나중에 사든 언젠가는 내 집을 갖고 싶어하는 분들이라는 가정 하에 제 생각을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집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고 하죠. 기성 세대가 올려놓은 집값을 우리가 받쳐줄 필요는 없다! 네, 뭐 물론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받쳐줄 필요가 없어서 "안 한다"기보다는 그럴 능력이 없어서 "못한다"는 게 사실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능력만 된다면야 내 집부터 장만하고 싶은 게 젊은 세대들 또한 예외는 아니거든요.


저는 올해 서른 셋입니다. 아내와 동갑내기이고요.
저희 세대 중에서 내 집 장만을 포기한 이들이 의외로 상당히 많습니다. 회사에 출근해서 입사 동기들과 이야기해 보면 다 명문대 출신에 연봉 그럭저럭 받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내 집 마련은 커녕 결혼 준비조차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명문대를 졸업한 대기업 직장 남성이 30대 초반에 결혼을 하려면 최하 1억 5천은 있어야 하는데, 부모님 도움 없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게 이유더군요. 그러고 보면 4년 전에 서로 똑같이 뿜빠이해서 각자 7천씩 박고 대출 받아 결혼했던 저로서는 참 행운이었던 것 같네요.

신혼 초에는 별 생각 없이 그저 열심히 일하면서 근면성실하게 모으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부부 수입 합산하면 연 1억 가까이 들어왔으니 부지런히 모으다 보면 내 삶은 행복해지겠지 했지만, 전세 계약 2년 끝날 때쯤 부동산 분위기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무작정 모으기보다는, 모은 돈을 어떻게 굴려 가며 키울 것인가의 문제가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뭐든 한 발 앞서간 놈이 조금 지나면 열 발 앞서가는 흐름이 바로 부동산 시장 아닌가 싶었습니다.

물론 한창 호황기는 지났다고 봐야 하고, 부모님 세대처럼 부동산으로 벼락 부자 될 확률은 상당히 줄어든 시기입니다만, '현물'이라는 점에서 부동산이 주는 매력은 참 크더군요. 그래서 전세 계약 1년 연장하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던 부동산에 재미를 붙여 1년 동안 부지런히 배우면서 아직 초짜티를 벗지 못한 상태에서 내 집 장만을 해 버렸습니다.

음... 달라진 게 분명 많긴 하더군요. 요즘 젊은 사람들 내 집 장만하느라 대출 많이 받으면 삶의 질이 떨어지니 싫다! 이런 사람들 많다고 하던데요... 사실 그런 건 크게 못 느꼈습니다. 예전처럼 해외여행 1년에 1~2번은 꼬박꼬박 가고, 외식 할 거 전처럼 똑같이 하고, 아내에게 명품 가방 1년에 1~2개는 사 주고 다 합니다. 다만 저축을 전혀 하지 못하고, 과거 저축액이 그대로 대출 상환액으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가 달라졌네요. 아, 제가 차를 바꾸지 못했다는 점도 차이점이라면 차이겠군요. 5년된 차를 올해 바꾸려다가 집 사면서 못 바꿨습니다; 제 한 달 용돈은 그대로 25만 원이니 변한 건 없고요. 뭐 술 담배 다 안 하니 그것도 남습니다만.

남들은 집을 사면 하우스푸어다 뭐다 해서 그리 어렵다는데 왜 나는 안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대출을 얼마를 받든 수입으로 충분히 커버 가능한 수준으로만 받는다면 허리띠 졸라매고 살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비슷한 시기에 결혼한 입사 동기들 보면 원래 부모님이 넉넉하셔서 집을 사 주신 경우 제외하고는 모두 무주택자입니다. 어차피 대한민국 집값은 미쳤으니 굳이 얽매여 살 필요가 없다, 앞으로는 금융자산이 중심인 시대가 올 것이니 부동산자산은 한물 갔다 등등의 생각들을 하는 모양입니다. 5천만 원짜리 SUV나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고, 하룻밤에 수십만 원 이상 드는 술집에 다니고 그렇게 인생을 즐기는 게 이른바 젊은 세대의 트렌드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뭐 남의 라이프 스타일에 관여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좀 걱정은 되는군요.

제 또래 직장인들은 부동산보다는 주식에 관심이 많고, 주택청약보다는 펀드 불입에 더 관심 많은 편입니다. 거의 반은 펀드매니저처럼 주식에 빠진 그들 앞에서 부동산 얘기해 봐야 꼰대 취급만 받으니 뭐 별 말 안하게 되네요.
그런데 웃긴 건 그러면서도 막상 그들은 역세권에 번듯한 집을 가진 저를 은근히 부러워하더군요. 부동산 타령하는 꼰대 취급하면서도 말이지요. 또 막상 동기들 중에서 주식해서 폭삭했다는 말은 자주 들어도 주식으로 대박쳤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기야 주식 대박은 아무나 치는 게 아니니 당연한 거겠지만요. 애널리스트인 제 여동생과 회계사인 매제도 몇 년째 주식을 합니다만 찌럭찌럭 버는 수준을 못 벗어나던데, 보통 사람들이 대박치기가 좀 어렵겠습니까.



뭐 여하튼... 그렇게 세대의 가치관이 점차 변해 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만... 요즘 같은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한 번 짚어 보면 또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사회 순환 사이클이 빠른 세태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건 바로 "안정"입니다. 그래서 도전 정신에 넘치는 벤처기업가보다는 공무원이나 약사가 더 대접 받는 세상이 되었지요. 세상이 너무 불안하니 최소한의 안정성이라도 확보할 수 있는 직업과 자산 구성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내 집이란 게 절실한 세상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꼭 지금 집을 사야한다 어쩐다 하는 이른바 폭등론자 님들에게 동조하려는 건 아니고요. 세상 자체가 안정을 요구하는 만큼 부동산의 가치가 여전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말씀 드리는 겁니다.

화폐 가치가 지금처럼 떨어진다면 금융자산은 특별한 수익 구조를 보장 받지 않는 이상에는 결국 앉은 채로 차츰 가난해져 가는 길입니다. 주식은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점에서 안정과는 거리가 멀고요. 물론 안정성 위주의 채권과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도 많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에 반해 부동산은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만지고, 눌러 앉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실 거주 가치와 자산 가치를 동시에 지닌 자산입니다. 게다가 주거 안정성을 해결해 준다는 점에서 훨씬 안정적이고, 시세 변동 면에 있어서도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매우 안정적인 성향의 자산이지요. 큰 주기로 본다면 차츰차츰 꾸준하게 일정 수준 이상의 평균 상승률을 보이는 모범 자산이니까요.




그래서 더 내 집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과거 부모님 세대에는 부동산이 투기의 소재이기도 했지만, 그런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이제 가계의 중심 자산으로서 모든 경제 활동의 근간을 이뤄 주는 안정 자산의 의미가 크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환금성이 떨어지니 당장 수입이 없는 은퇴 세대 분들에게는 실용성이 떨어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직업이 있어 수입이 있는 젊은 세대에게는 그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고요.


그래서 가급적 일찍 내 집을 마련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직 애가 어려서 살인적인 교육비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부모님도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경제 활동을 하셔서 부양비 부담이 거의 없는 시점에 바짝 모아서 집 사야지, 그 시기 놓치면 두고두고 힘들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지요.


하우스푸어에 대해 말 참 많습니다만... 그들의 면면을 보면 대개 40대 이후의 가장이 있는 가정입니다. 즉, 은퇴는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고, 애들 교육비와 부모님 부양비 부담은 극도로 커진 상태에서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는 때에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예 경제적 부담이 훨씬 덜한 30대 초중반에 바짝 노력해서 집 사고 차차 대출금 갚아 나가면, 정작 경제적 부담이 큰 40대에는 적어도 집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요즘 입사하는 젊은 신입사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해 줍니다.
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적성과 재능에 잘 맞는 업무를 찾아 당당한 사회인이 되는 것이고, 그 다음은 30대 초반에 인생의 기반을 닦을 수 있을 만큼 젊었을 때 바짝 노력하라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신입들은 첫 번째 이야기에는 수긍을 하면서도 두 번째 이야기에 대해서는, "에이, 그동안 취업 준비하느라 많이 힘들었는데 어느 정도는 인생을 즐기고 살려고요."라는 반응들이 많더군요.

그 "어느 정도"가 도대체 얼마 동안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느 정도" 인생을 즐기던 제 동기들이 30대 중반에 접어드려는 이제서야 차차 내 집이란 것에 관심을 품고 체계적인 재테크(찌럭찌럭 유망주라는 것에 몇 푼씩 뿌리는 게 아닌 계획성 있는)에 눈을 뜨게 되더군요. 몇 년을 허송세월하고 말입니다.


비단 제 동기들만의 문제가 아니겠지요. 대학 동창들도 비슷하고... 선후배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이고... 월 사오백씩 버는 이들이 젊은 날 인생을 즐긴다는 명분과 기성 세대들의 집 잔치에 동참하기 싫다는 당당함을 가장한 비겁한 선언에 따라 시간과 돈을 헛되이 쓰는 게 아깝습니다.

그에 대한 해답이 꼭 내 집만 있는 건 아닙니다만...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인 해답 중 하나가 내 집이 아닐까 하네요.

펄벅 여사의 소설 대지에 나오는 말이었나요? 땅은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말... 내 집이란 절대까지는 아니어도 거의 주인을 배신하지 않을 자산 아닐까 싶습니다. 해방 이후 60여 년 이상의 한국경제사를 보아도, 세계 경제 추이를 보아도 말이지요. 그래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더 절실하게 내 집 장만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진다면, 적어도 나이 먹고 하우스푸어 되어 허덕이거나, 또는 그만도 못해서 남들 집값이나 하락하라고 악다구니 써 대는 패배자가 되는 이들이 적어지겠지요.


또래들 보면서 드는 괜한 생각에 글이 길어졌네요. 내집마련 게시판을 오시는 분들 중에 혹시라도 저와 같은 30대 초반 분들이 계시다면,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집값 비싸서 엄두 안나고, 회사에서는 한창 실무 많이 담당할 짬이라 벅차고 해도 그래도 우리 30대 초반은 좀 나은 세대잖아요. 90~92학번 형님들 IMF 여파로 사회 진출 초기부터 고생하셨고, 01~06학번 후배들 보면 극심한 취업난에 인턴 자리 하나 구하기도 힘들어 허덕이는데... 90년대 중후반 학번들은 그나마 좀 나은 형편 같으니 그것으로나마 자위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키웠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