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보포털에서 거래포털로!

이화여대 김진호 교수님의 글인데 제가 퍼왔습니다.
물론 경제학자라고 해서 전망을 완벽히 예측할 순 없지만 어느정도 신분과 경제적 지식이 검증된 그리고 업체와 연관이 비교적 덜한 사람의 글을 올리는 것은 여러분의 부동산 전망에 대한 생각을 객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산을 내려갈 때는>

마지막으로 등산을 했던 때가 아마도 몇 달은 지난 듯 싶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에 혼란스러울 때 배낭 하나 둘러메고 훌쩍 가보면 언제나 그렇듯이 그 자리에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산의 모습이 좋아 자주 찾던 산이었는데 요즈음 통 못 다닌 것은 필자의 게으름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산에 오를 때마다 갖는 생각이지만 인생의 구비 길과 산이 참으로 비슷하다는 것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지칠 만하면 샘터나 개울이 쉼터를 마련해준다.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너무 많은 힘을 초반에 소진하다보면 산을 즐기지도 못할 뿐 아니라, 막상 정상에 이르러서는 너무 지쳐 내려올 힘이 없어진다.
이 모두 우리 삶과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필자의 개인 경험에 비추어보면 실족(失足)을 포함한 산에서의 크고 작은 사고는 산을 오를 때보다는 내려올 때 더 자주 발생한다.
아무래도 오르막에서 힘을 많이 소진하여 지친 데다가 어쩐지 내려가는 것이 수월하다는 방심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필자는 산 정상에서 충분히 쉬고 힘을 비축하여 하산을 하며 내려올 때도 원하는 속도보다 다소 느리게 걸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런 저런 삶의 가지를 염두(念頭)에 두고 쉬엄쉬엄 내려오다 보면 산 정상에서의 탱탱한 긴장감이 어느 덧 사라지고 삶의 새로운 활력이 솟아나는 것을 느낀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조심해야 한다.

최근까지 금융시장은 지속적인 저금리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소비를 활성화시키고 기업의 투자의욕을 북돋우려는 정책당국의 의도와는 다소 어긋나게 저금리와 풍부한 시중유동성은 지난 1-2년 간에 걸쳐 부동산 가격을 치솟게 한 주범으로 주목받고 있다.
금융시장의 긴축을 통해 부동산 거품 형성을 막아야 한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주장을 뒤로 한 채, 또 다시 부동산 시장은 엄청난 괴력(怪力)으로 가격 상승을 이끌어내고 말았다.
지가상승에 따른 경제적 원가상승 및 무주택자의 허탈함은 당분간 우리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단기간 부동산 가격 급등의 후유증을 적절히 예방하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올랐다는 시장의 자율적 판단, 금융권의 가계대출 억제, 새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작동하면서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부동산 가격이 이상 급등했다면 일정 부분 하락하는 것은 자연스러우며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그 속도에 있다.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더욱 조심하듯이 시장의 거품은 형성될 때보다 꺼질 때 더욱 조심스럽다. 부작용이 일시에 터지게 되면 정책을 통해 치유하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최근까지의 부동산 가격 급등을 이끌어낸 것을 투기꾼들의 탓만으로 돌릴 수 없다.
사상 최저 금리로 대출 부담이 크게 경감된 데다가 지속적으로 집 값이 오르자 불안해진 실수요자들의 매입도 큰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한편 불투명한 경영환경 하에서 기업들이 투자를 망설이자 마땅한 자금 운용처를 찾지 못한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부동산 대출에 나서면서 이들의 부동산 투자를 적극 부추긴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제 집 값이 급속도로 하락할 경우 어떤 상황이 예상되는가?

투기꾼들이 최근의 부동산 가격 하락이 일시적 조정이 아니라 대세 하락으로 판단하여 급매물을 내놓기 시작한다면 가격 하락의 폭은 커지고 하락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아마도 요즘의 시장상황이 이런 초기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이제 부동산 가격이 계속적으로 하락할 경우 담보 대출을 통해 집을 구입한 중산층과 서민 실수요자들에게 불똥이 튄다.
담보 부족 상태에 직면한 은행들이 추가 담보, 또는 대출 상환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응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불가피하게 집을 매물로 내놓기 시작하면서 2차 하락이 시작된다.
이에 따라 담보 가치에 비해 적은 대출을 받고 다소 여유 있게 집을 매입했던 사람들에게까지도 악영향이 미친다.
부동산 가격의 2차 하락은 이들의 경우에도 담보 부족 사태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큰 영향은 엄청난 규모의 부동산 대출을 주도한 은행권에 미친다.
1997년 외환위기가 기업들에 대한 부실대출에서 유발되었다면, 일부에서 지적하듯이 제 2의 위기 는 가계 부문에 대한 부동산 담보 대출 및 신용대출 부실에서 촉발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상의 시나리오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그려본 것이다.
과거에 비해 많은 정책적 제어장치를 갖춘 현재 시점에서 정책당국이 이러한 시나리오대로 경제가 붕괴하는 것을 손놓고 바라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안심하기에는 작금의 대내외적 정치, 경제적 상황이 지극히 불투명하다.
이라크 전쟁이나 북한 핵 문제와 같이 우리의 힘이 닿지 않는 외생적 요인들은 논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내부의 불확실성은 신속하게 제거시켜주어야 한다.

나무를 옮겨 심고 나면 당분간 조심스럽게 물도 주고 정성껏 지켜보아 주어야 한다.
사람들도 집을 이사할 전후로는 마음이 어쩐지 심란하고 일이 손에 잘 안 잡히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환경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은 식물이건 사람이건 많은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곧 새로운 정부를 맞는다.
이를 위해 정권 인수 팀이 만들어지고 착실하게 준비가 갖추어져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이사를 전후한 막연한 불안감과 좀 다른 것 같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것 같은 정책 제안들이 날이면 날마다 쏟아진다.
일단은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난 뒤 시간을 두고 하나씩 해결하면 될 것을, 무엇에 의해선 가 재촉 받는 듯 서두르는 모습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새 정부는 이제 머나먼 산행 길을 오르기 시작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정상에서 내리막으로 접어들었다.
잘해보겠다는 욕심은 당연하고 바람직하지만 지금은 부동산 거품이 제거되는 초기 단계임을 감안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해주기를 희망한다.
이미 시장은 추가적 악재 없이도 자체적인 조정과정에 의해 가격 하락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실수요자들은 추격 매입을 삼가고 가격 하락을 기다리고 있으며 은행들도 부동산 담보 대출에 소극적인 태도로 바뀌어 가고 있다.
지금 형성된 부동산 거품은 이와 같은 시장자율에 의해 장시간에 걸쳐 서서히 지속적으로 제거해야지, 정책 욕심에 일시에 해결하려고 들어서는 곤란하다.

더군다나 이러한 시점에서 정부가 시장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킨다면 거품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터져 버릴 가능성이 있다.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올랐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지금은 이를 안정시키기 위한 새로운 정책의 칼을 뽑지 않아도 된다.
시장의 실패가 확인되지 않는 한 시장을 믿고 지켜 보아주기 바란다.
지난 해 우리는 부동산이 너무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을 막는 데에는 실패하였지만 이제 내리막길에서라도 실족(失足)하지 않게끔 해주어야 한다.
산은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 더욱 조심하여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