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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는 주택이 주거의 개념인 것에 비해 한국은 재산의 개념이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의 주택은 어떻게 보면 ‘최후의 보루’와 같은 존재입니다.
실직을 하거나 사업이 실패해도 아파트 한 채라도 번듯한 것이 있으면 그래도 마음이 놓이고 재기를 꿈꿀 수 있습니다.
'그래, 이 아파트를 팔면 그 돈으로 무엇인가 해서라도 먹고 살겠지’라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서 용돈이며 생활비를 얻어 쓰는 노인들까지도 아파트는 가능한 처분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파트 한 채라도 재산이 있으니까 자식들이 괄시 못하는 것이고 당신이 돌아가시면 아파트 한 채라도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다고 흐뭇해하십니다.
이처럼 한국에서 집이라는 것은 단순한 재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집값 상승에 그렇게 민감해 하고, 누구나 자기집 마련의 꿈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을 회고해 보면 정부가 국민들의 꿈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국민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하나의 예가 ‘9.5 부동산 대책’입니다.
정부는 재건축 아파트의 값이 급등하니까 이를 잡기 위해 재건축아파트의 60%를 전용면적 25.7평 이하로 제한하는 규제를 내놓았습니다.
이러한 대책은 ‘재건축 아파트값이 왜 상승하였는가?’에 대한 가장 기본적 원인도 무시한 정책이었습니다.

재건축 아파트는 재건축에 대한 예상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상승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상수익률은 기존 강남 큰평형 아파트의 가격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강남 큰평형 아파트의 값이 상승하면 재건축의 예상수익률이 높아져 재건축 아파트값도 상승하고, 반대로 값이 하락하면 예상수익률과 함께 재건축 아파트값도 낮아집니다.
따라서 재건축 아파트값을 잡기 위해서는 강남의 기존 아파트값의 상승을 억제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재건축 아파트값을 잡기위해 ‘9.5 부동산 대책’을 실시한 결과 수요가 많은 큰평형 아파트의 공급을 축소할 뿐만이 아니라 재건축 자체를 억제함으로써 기존의 큰평형 아파트값을 도리어 상승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리고 재건축 아파트값의 기준이 되는 기존 큰평형 아파트값이 상승함에 따라 재건축 아파트값도 재상승하는 악순환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9.5 부동산 대책’은 도시계획을 무시한 정책이었습니다.
새로운 재건축 가이드라인에 따라 재건축이 이루어진다고 할 때 아파트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아파트 값의 상승억제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아파트 숫자의 증가에 따른 교통, 상하수도, 전력, 교육 등의 환경악화는 어떻게 해결할지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즉, 보다 넓고 쾌적한 주거 환경을 추구하는 국민의 권리는 ‘9.5 부동산 대책’에서 무시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파트값 급등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이를 무시하고 대증적 처방에만 급급하였던 ‘9.5 부동산 대책’은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또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 당연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9.5 부동산 대책’과 같은 정책과 규제들을 수없이 많이 겪어 왔습니다.
그 동안의 강도 높은 각종 대책에도 불구하고 아파트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함에 따라 정부에서는 보유세 강화, 아파트 거래허가제 도입, 분양가 규제 등 새로운 대책을 고민하고 있는 듯 보이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남 아파트값을 잡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아파트 값이 마침내 잡히겠구나 하는 기대보다는 불안감이 더 들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즉흥적, 대증적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을 혼란시키고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킬지 두렵습니다.

자기집 마련과 넓고 쾌적한 주거환경은 모든 국민들의 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정도를 가야 합니다.
여기에서 정도라고 함은 아파트의 수요와 공급에 기초한 일관된 정책추진과 이를 통한 국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 쌓기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강남 아파트에 대한 (잠재적) 수요가 얼마이고, 공급이 얼마나 될 것인지를 우선 분석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급등현상이 저금리 등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장기적 추세인지를 밝혀야 합니다.

만약 일시적 수급불일치로 인한 가격상승이라면 가격 안정을 위한 일시적 충격요법의 불가피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하여야 합니다.
수요를 억제하는 단기적 대책도 채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아파트 가격이 단기적 수급불일치로 인한 일시적 급등현상이고, 중장기적으로 공급이 충분하여 아파트 가격이 안정된다는 믿음을 국민들이 가진다면 가수요나 투기는 크게 줄어들 것 이고 아파트 가격의 변동폭도 낮아질 것이며 국민들의 불안심리도 해소될 것입니다.

반대로 아파트 가격 상승이 중장기적인 수급불일치로 인한 구조적 문제이라면 향후 공급을 어떻게 증가시켜 가격을 안정시킬 것인지 중장기적 로드맵(road map)을 제시하여야 합니다.
이 경우 정책은 아파트 공급의 확대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보유세(수요억제)나 분양가 규제(공급억제) 등과 같은 정책은 부정적 효과가 크게 됩니다.

아파트 가격상승의 원인파악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아파트의 수급과 가격에 대한 정부의 중장기적 전망이 무엇인지, 그리고 중장기적 정책방향과 실천계획이 무엇인지, 현재의 아파트 값 상승의 원인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아직 접근해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정부 내부적으로 이런 정보들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보들을 국민들이 알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경제규모가 점점 커지고 경제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능력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형성은 아파트 가격의 안정뿐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부동산 대책이 나올지, 그리고 나온다면 어떤 모습일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단지 새로운 대책이 있다면 그것은 국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를 형성하는 그런 대책이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