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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한지 어느덧 12년이 흘렀습니다.

남들이 조금은 부러워하고 또 남들에게 꿀리지 않을 직장입니다.
90년 입사 첫해 제 연봉이 아마 천만원이 조금 넘었던 걸로 기억됩니다. 지금은 6천만원 정도 됩니다.

이제 제가 왜 이 글을 쓰는지 말하겠습니다.

제가 받는 소득이면 그새 벌써 집을 몇채를 가질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불과 한달전까지만 해도 저는 무주택자였습니다.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넉넉한 소득에 언제든지 내가 원할때 집을 장만할 수 있을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란 세월이 지나도록 내가 가진 건 단돈 2천만원이더군요.
되돌아 봤습니다. 이래서야 어디 분양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그 동안에 나는 뭘 하며 살았단 말인가?
나보다 소득이 절반도 안되는 사람들, 나보다 훨씬 직장생활을 덜한 사람들,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들이 벌써 내집을 갖고 회사에서 빌려주는 임차보증금을 반환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 어떤 상황인가?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리고 입사 첫해부터의 내 생활방식을 돌이켜 봤습니다.
결혼하기 전 33살이 될때까지 남은 건 카드빚, 돈 아낄줄 모르고 고급하숙집에, 전자제품에, 술집에 내가 받은 근로의 댓가를 모두 헌납하고 버스 타기 싫어 까만 택시타고 다니던 내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군요.

내가 그때 내집마련을 조그마한 것부터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그렇게 흥청망청 살았을까요?

중학교만 졸업하고 일찍부터 노동시장에서 잔뼈가 굵어진 시골 내 친구는 벌써 10년전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시골에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장 얻었다는 나는 지금 돈 한푼 없이 뭐하고 있었단 말인가?
불과, 몇달전만 해도 남들처럼 집장만을 위해 허리띠 졸라매기는 커녕, 회사가 지원해 준 전셋집에 52인치 엘시디 티비에, 까사미아 가구를 사들이던 나였습니다.

그렇게 즐기며 불과 한달전까지 살았습니다.
어느날 전세주인이 저보고 집을 빼달라고 하더군요.
계약기간도 안 됐는데 말입니다. 아, 이렇게 언제까지 살 것인가 하는 생각에, 더 늦기 전에, 대출을 받을만큼 받아서라도 내집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샀습니다.

아직 나는 내가 내 명의의 집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한 특별한 느낌이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내 아내와 내 아이들의 행동입니다.
내 아내는 차지하더라도 내 아이들의(6살,4살) 행동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숨죽이며 살던, 그래서 쿵쿵거리지도 않았던 얌전한 아이들이 우리집이란 것 하나로 맘껏 소리지르고 맘껏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집인줄 알았습니다. 내집의 소중함도 알았습니다.

아직 집을 장만하지 못하신 분들에게 이런 말을 해 드리고 싶습니다.
저 역시 집값에 불만이 많았던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솔직히 집값이 왕창 떨어지기를 바랬습니다.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속에 돌아온 건 자꾸만 멀어지는 내집마련의 기회였습니다.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게는 십몇년, 짧게는 5년 이상을 허리띠 졸라매고 분양받아 내집마련 한 사람들입니다.
저도 입주하면서 함께 입주한 다른 세대들의 이삿짐 속에 묻은 때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부끄럽더군요.
십년은 족히 사용했을 법한 이불과 가구가 제 시야에 들어오더군요.
그 사람들은 대출도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나는? 광택나는 가구에, 반짝거리는 커다란 티비를 싣고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이삿짐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숨겨진 허와 실은? 알토란과 빈강정의 차이가 있습니다.
어쨌든 이렇게라도 저는 집을 장만했습니다.
어느분 글처럼 월세나 마찬가지인 입장이지만, 그래도 내 명의의 내집입니다.
그것이 내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주나 봅니다.

긴 세월을 힘겹게 견디며 집 장만하신 분들에게 머리가 숙여집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이 그렇게 마련한 집마저 폭락을 기다리는 일부 배짱이들에게 충고해 주고 싶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나 집이라는 것은...

그리고, 집장만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처럼 안이한 생각으로 집을 우습게 보지 마세요.
최대한 절약하고, 아끼고, 제테크, 세테크 다 동원해서 내집마련을 준비하세요.
노력한만큼 얻어야 정상이지 집값 폭락을 기다리는 것은 투기꾼과 다를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