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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아파트 과연 살만한 곳인가? 토론방에 너무 내용도 없이 오고가는 반론만 무성하여 삭막한 것 같아 퍼올립니다. 도움되는 많은 이야기를 올려 토론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공감이 되서 퍼왔습니다.

[도시와 건축 사이] 초고층에서 살기

언제인가부터 서울 시내 주택가에 갑자기 40~50층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람 사는 아파트촌에 웬 고층건물들인가 했더니만 그것은 고층상업건물의 탈을 쓴 초고층 아파트였다. 초고층 아파트의 모델 하우스에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미분양이 속출하고 수많은 건설회사들이 수요가 없어서 망해 가는데도 초고층 아파트는 수 십억 원에 마구 팔려나간다. 사람들은 강남 일대의 고급 빌라를 버리면서까지 저 높은 하늘의 집을 사고 싶어한다.

어떻게 보면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기술과 자본의 상징인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외관은 굉장히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숨이 탁 막히기도 하고, 좀 너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얼굴에 온갖 표정이 나타나고 만감이 교차하면서 결국 머리 속은 복잡해지기만 한다.

1. 주거

건축의 가장 중요하고도 주된 기능은 바로 사람이 살 수 있는 Shelter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추위와 비바람, 어둠을 이기기 위해 사람들은 다리 뻗고 지낼 수 있는 장소를 찾게 되었고, 신석기 혁명 이후 한 곳에 정착하면서 움집과 막집이라는 최초의 주거를 만들어 내었다.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계급이 발생하면서 사회가 성립해 나감에 따라 다양한 용도의 건축이 요구되었다. 주거 기능을 담는 이외에도 집회, 공공, 위락, 상업 등 수많은 건축이 생겨났으며 지금까지도 이러한 양상은 변하지 않고 있다.

최초의 건축은 주거였다. 그리고 최초의 도시 역시 오늘날 터키 지방의 카탈 휘익이라는 집단 주거지였다. 건축에서 주거가 차지하는 비율은 100%로 시작했지만, 공사비와 물량에 있어서 오늘 날 주거가 차지하는 비중은 채 40%도 되지 않는다. 그만큼 주거가 건축에서 차지하는 필요성과 중요성은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첨단 건축기술과 대형 자본은 초대형 오피스 빌딩 등과 같은 건축으로 몰리고 있다. 아마 수 백년 후에 건축사가들은 중세를 고딕의 시대, 근대를 철과 유리의 시대,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상업건축의 시대라고 평가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거는 절대로 그 중요성이 감소할 수 없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생존 요소이다. 건축에서뿐만 아니라 사회학, 철학, 지리학 등 각종 사회과학과 공학에서 주거 문제는 계속 연구되고 있고, 항상 발전하고 있다. 주거의 중요성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 문제이고, 섣부른 판단에 의해 지배되어서는 안된다.

2. 우리의 주거

우리의 주거를 한 번 살펴본다. 나는 지금 15층 아파트의 6층에 살고 있다. 예전에 살던 곳은 15층 아파트의 13층이었다. 아마 우리 주변의 절대다수가 아파트에 살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에 아파트 세대수가 주택 세대수를 앞질렀으며, 현재 지어지고 있는 주거 건축의 90% 이상은 아파트이다. 그만큼 우리 나라 사람들은 주택보다는 아파트를 선호하고, 이러한 경향은 도시와 농촌이라는 구분에 구애받지 않는 듯 하다.

원래 아파트는 생겨났을 당시, 하층민과 빈민을 위한 집단 공동주택이었다. 도시화에 따른 과밀화 문제로, 주택과 공간이 부족하게 되자 집을 수직으로 쌓아 올리기 시작하였고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수용하는 것이었기에 초기에는 전기와 수도 공급 그리고 쓰레기 처리 등의 기본적인 위생 문제가 등 삶의 질이 별로 좋지 않았다. 현재는 이러한 문제들이 대부분 해결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선진국에서 아파트는 고급주거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아파트가 가장 고급 주거이다. 물론, 재벌과 같은 최고의 부자들은 개인주택에 살지만, 대체적으로 돈 있다 하는 사람들은 주택보다는 아파트를 선호하고, 고급 아파트에 산다. 압구정동, 청담동, 서초동, 방배동, 아시아선수촌, 워커힐 등으로 대표되는 서울의 고급 아파트 단지는 우리의 아파트 선호 경향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80~90평에 이르는 이들 고급 아파트들은 십 수억에서 수십 억 대에 거래되고 있다. 이 같은 돈이라면 수백 평의 개인주택을 소유할 수 있고, 미국 굴지의 저택을 살 수 있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아파트를 선호한다.

이러한 현상은, 아파트가 주택보다 살기 편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1960년대에 대한주택공사에서 아파트를 보급하기 시작할 때, 아파트가 사회적으로 미친 최초의 영향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포아파트, 한강맨션으로 대표되는 최초의 아파트 건축은 기존의 도시한옥 주거와는 차원이 다른 개념의 주거였다. 생활 양식이 좌식에서 입식으로 바뀌었고, 전기와 수도가 공급되고 난방이 되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이들 아파트는 각종 영화의 단골 촬영지가 되었고, 사회적으로 돈 있고 조금 튀고 싶은 사람들은 아파트에 입주하려 하였다. 당시 아파트에 살게 되는 것은 대단한 특권처럼 여겨졌고, 이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3. 고층

고층에 대한 이야기는 약간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소위 고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축은 19세기 말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되었다. 이전에 이미 프랑스 등에서 에펠 탑과 같은 대형 철골 구조물이 출현했지만, 건축으로서의 고층은 이들 시카고 학파가 처음이다. 19세기 중반, 대 화재에 의해 시카고시가 철저히 파괴되면서, 지식인들은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빠른 시간 내에, 고효율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방법으로 고층 건물을 택하게 된다. 당시 절정에 이른 철골과 유리 기술로, 불과 수 년 내에 시카고는 마천루의 도시로 변했다.

이들 고층 건축은 이후, 초고층의 효시라고 부를 수 있는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크라이슬러 빌딩 등과 같은 고전을 남겼고, 현대에 들어와 그 수요는 미국과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우리 나라의 경우도, 1930년대 화신백화점이 최초의 고층 건축으로 등장한 이후, 3·1 빌딩, 6·3 빌딩, 무역센터 등 최근 몇 십 년 내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층·초고층 건물이 출현하였다.

이러한 고층의 경향은 주거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60년대 뉴욕 맨해턴에 이미 30~40층의 아파트가 등장했으며, 서울에는 1980년대 초반에 서울 전지역에 12층의 아파트가 등장하였고, 1980년대 후반에는 15층으로 확대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상계동과 목동 그리고 5대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아파트의 층수는 20층, 30층을 넘어서게 되었다. 여기에는 고층이라는 새로운 공간적 체험도 한 몫 했지만, 그것보다는 건축법이 정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건설회사의 논리가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람들은 왜 고층을 지으려고 하는 것일까? 성서에 나오는 바벨 탑은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자 하늘을 찌르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리고 중세 유럽 고딕 성당의 첨탑은 신을 향한 신앙심의 표출이자 도시 번영의 상징이었다. 근대 미국 시카고학파나 유럽의 대형 철골 구조물은 절정에 달한 기술의 성과였다. 오늘날의 초고층 상업 건축은 도시화와 도심과밀화에 따른 필요에 의한 것이다. 각 시대별로, 사상과 실용적인 필요에 의해 고층이 지어졌다지만, 과연 초고층 주거에는 그럴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4. 초고층 주거

초고층은 고층과 어떻게 다른가? 단적으로 말하면, 좀 높은 고층이다. 일반적으로 고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차원의 층수이다. 상업 건축의 경우 대체적으로 약 40층이 넘어가면 초고층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주거 건축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다. 기존의 관념은 15층 아파트를 소위 고층 아파트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면 15층을 넘는 주거가 바로 초고층 주거일 것이다. 다시 말해, 고층의 범위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을 뛰어넘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최근에는 30층 정도를 넘지 않고서는 감히 초고층이라 부르기도 힘들게 되었을 정도로 초고층 주거의 층수는 높아져 가기만 했다. 실제로 현재 가장 높은 초고층 주거는 66층에 이른다.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들은 경쟁적으로 더 좋은 위치에 더 고급 내외장재를 사용한 초호화 주거를 지으려 한다. 그리고 언제인가부터 이들 초고층 주거에는 고급 의류처럼 브랜드 네임이 붙게 되었다. 기존의 주거와는 철저한 차별화 전략이다. 그런데, 초고층 주거가 이렇게 고급화되는 경향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초고층 주거를 작은 평수로 해서 일반 서민들에게 다량으로 공급할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아직까지는 그리고 당분간 성립 불가이다.

건물이 30~40층을 넘어가면, 특수한 구조 방식과 기술이 요구된다. 다른 개념의 구조설계와 더 강하고 튼튼한 골조와 시공방법이 요구되기 때문에 건설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결국 이것은 건물 자체의 가격을 상승시키게 되고, 이윤을 추구하는 건설회사의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이익을 올릴 수 있는 큰 평수, 호화 고급 주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초고층 주거에는 30~40평 대는 조금 눈에 띌 뿐 대부분 50~80평 대에 이르며, 101평에 이르는 것도 있다. 이들 주거는 동일 평수의 일반 주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가격이 높다. 실제로 도곡동 S기업 초고층 주거의 102평 아파트는 30~40억 원에 거래된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건설 단가가 낮아지면 바뀔 수도 있다는 예상을 해볼 수 있다. 작은 평수의 초고층 아파트가 공급될 것이고 도시 서민들의 주거난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기술이 그러하듯이 비용이 낮아지기 위해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 오랜 시간이 걸린 후에는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것이고 그러면 또다른 개념의 고급 주거가 탄생하게 될 것이다.

5. 초고층에서 살기

타워팰리스, 아크로빌, 트리폴리스, ...... 각종 매체를 통해 귀가 따갑도록 듣게 되는 이름들이다. 이들은 모두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서 지은 초고층 주거의 브랜드 네임이다. 이들 브랜드 네임이 상징하는 것은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차별성이다. 그곳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하는 것은 마치 초고급 승용차를 보유한 것과 같은 인식을 낳게 되었다.

기존의 주거는 평수가 얼마나 되는가, 위치가 어디인가 등 외적인 요소에 의해 그 가치가 평가되는 경향이 다분했다. 단지 내 설계의 질이나 각 세대간의 의사소통, 평면형태 등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초고층 주거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초고층 아파트는 위치나 평수에 관계없이 그 브랜드 네임 자체에 의해 평가된다. 이들 단지 내 환경의 질과 편의는 거의 호텔 급이고, 단지 설계와 평면형태 등 계획적 요소는 그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 정리하자면, 초고층 주거의 브랜드 네임은 고급, 호화, 편리한 삶, 세련된 디자인을 모두 포함하는 그 자체일 것이다.

초고층 주거에 사는 가장은 매일 아침 승용차로 출근한다. 주부는 고급 마감재로 치장된 집에서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단지 내에서 모든 근린 시설과 편의를 이용할 수 있다. 이들 가족은 자신들이 초고층 주거에 산다는 사실만으로 엄청난 프라이드를 느끼고, 그들 사이에서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하나의 계층을 형성하려 한다. 결국, 초고층에 사는 사람들과 그곳에 살지 않는 사람들 간에는 하나의 새로운 장벽이 생기게 된다. 초고층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어하고 이것은 결국 초고층 주거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는 현재 S기업과 D기업의 초고층 주거가 들어 서있다. 도곡동 인근 지역이 서울의 상류층이 사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지역의 주민들은 초고층이 들어서는 것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을 맛보고 있다고 한다. 초고층 주거의 출현에 따른 교통 문제와 일조권 등의 문제도 있겠지만, 자신들보다 높다고 할 수 있는 계층의 등장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기존의 상류층들도 이러한데, 나머지 중산층과 서민들은 오죽하겠는가.

6. 골리앗들

국내 굴지의 한 건설회사는 1998년 초, IMF 사태로 기업이 위기를 맞게 되자, 그 돌파구로 초고층 주거를 계획하게 되었다. 사업 시행 결과, 초고층 주거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이 회사는 막대한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초고층 주거가 우리 나라에 이런 식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 사실 못내 씁쓸하다. 뉴욕의 맨해턴처럼 도심의 과밀화 때문이 아니라, 기업의 자본논리 때문이라는 것이 아쉽다. 또, 돈 있다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들 초고층 아파트를 하나 사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모습에 허탈하기까지 하다. 나 자신도 내심 그런 아파트를 하나 갖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욕망이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닐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초고층 주거가 아무리 40~60층을 헤아린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최고 층수이지 10층 언저리에 사는 사람도 매우 많을 것이다. (10층 이하는 주로 상업시설로 이용된다.) 대부분이 10~30층의 비교적 중층에 사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초고층에 산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초고층이라는 것은, 매우 높은 곳이라기보다는 새로운 고급 주거 유형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10층에 살건 66층에 살건, 나는 초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이고, 이것은 나의 사회적 지위를 격상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논리이다.

결국 우리나라의 초고층 주거는, 잘 짜여진 논리적 근거나 실용적 필요에 의한다기보다는, 기업의 이윤 그리고 상류층의 허위의식에 의해 성립되는 것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보다 친환경적이고 인간적인 주거를 생각하는 머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최대이윤과 사회적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머리에 의해서 서울의 초고층은 지어졌고, 사람들은 그것을 천국으로 가는 티켓인 양 쫓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몇 달 전에, 도곡동 S기업의 타워팰리스 36층에 견학차 올라가 본 적이 있다. 66층의 절반에 불과한 높이에서였지만, 그곳에서는 오직 내려다봄만이 존재했고, 내려다보이는 그 광경은 비행기를 타고 나는 기분이었다. 저 밑에 보이는 자동차는 개미보다도 작아 보였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눈에 거의 들어오지도 않았다. 인근의 많은 아파트 건물은 아이들 장난에 불과한 것처럼 유치해 보이기까지 했다. 바로 이것이다. 허영심과 자만. 내가 그 높은 곳에서 얻은 경험은 허영심과 자만 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