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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볕더위 위세는 사실 별게 아닙니다.

며칠 낮을 뙤약볕으로 달궈진 세상이 고작 하룻밤 비로 상큼해졌으니 말입니다.

장맛비가 며칠 낮을 쏟아 부었으면 사단이 났어도 크게 났을 거고,

그나마 그 뒷수습도 뙤약볕 며칠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허우대는 멀쩡 해보여도 실상 불볕더위는 장맛비보다 한수아래라는 뜻이죠,

가뭄 때부터 장맛비 주가가 상종갑니다.

그동안 장마라 해서 하찮게 보던 인식은 이참에 다시 생각해 봐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장맛비가 밤을 새워 만든 아침이 더없이 싱그럽습니다.

 30도를 넘는 불볕더위를 뚫고 사무실에 불쑥 들어선 이는 둔촌주공 34평 소유잡니다.

어제오후 퇴근 무렵 역시 34평 소유자인 친구와 함께입니다.

집값이 궁금하다는 거였습니다.

재건축은 대체 어떻게 돼 가는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신문을 보면 당장 나라가 거덜 날 것 같은데 과연 태평하게 있어도 괜찮은지 걱정이 앞선다고 했습니다.

 재건축이 늦어지면 팔아버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새집에서 살고 싶은 일념에 지금까지 참아 왔는데 더 이상 참기가 힘들다고 했습니다.

집값이 더 떨어질 것 같으면 급매물로라도 팔아버리면 어떨까 싶다고 했습니다.

새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어차피 모든 집값이 다 떨어졌으니 팔고 다른 집으로 갈아타도 피장파장 아니냐고 했습니다.

고점에 파는 거 보다야 못할지 모르지만 그다지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닐 성 싶다고 했습니다.

대출이자 내기도 힘든데 이런저런 속을 썩이느니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같이 온 친구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기는 아파트는 다시 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아파트 값이 예전처럼 오를 것 같지도 않다는 이유에섭니다.

매월 월세를 받는 주택으로 갈아탈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처럼 은퇴세대는 노후대책이 가장 큰 걱정꺼리라고 했습니다.

주변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널렸다는 말도 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집은 집이상의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집은 가족의 안식처임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보다 재산증식의 수단이라는 의미가 더 강합니다. 단칸 셋방

이 전셋집으로 소형아파트가 대형아파트로 늘어나면서 재산은 덩달아 불어났습니다. 푼푼이 모아서는 감

히 만질 수 없는 목돈을 집이 불면서 자연스럽게 불어난 셈입니다.

집은 아이들 결혼밑천이고 노후수단입니다.

어쩌면 신분상징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집은 서민들에게 목숨 줄이나 다름없습니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은 재산이 줄어드는 것과 매한가집니다.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재산이 늘어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칩니다.

그동안 대출을 내서라도 집을 샀던 것은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산

증식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심의 여지없이 집에 투자하는 방법입니다. 덩치가 크면 클수록 그 대가도 컸

습니다. 눈사람이 크면 클수록 굴릴 때마다 크게 불어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모아 논 돈은 많지 않아도 집 하나만 눈사람처럼 불리면 아이들 결혼밑천도 노후대비도 큰 걱정은 없습니

다.

집값은 결코 배신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입니다.

 태고 적부터 이어져오던 불문율이 깨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주택시장 침체가 깊어지면서 투자의 패턴에 변화가 오고 가계에 짙은 먹구름이 꼈습니다.

일본과 같은 불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위협이 신문만 펼치면 우박처럼 쏟아집니다.

2008년 리먼 사태의 재판이라거나 유로 존 사태가 전이될 조짐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습니다.

부동산침체가 자칫 소비위축으로 이어지면 경제전반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도 점점 더해 갑니

다.

 소비위축의 현상은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합니다.

가계부채에 시달린 서민들이 씀씀이를 줄인다는 소식들입니다.

자영업자들이 장사가 안 돼 죽겠다고 아우성인지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닙니다.

 한국인의 교육열은 남다릅니다. 때문에 먹을 것은 줄여도 웬만해서는 아이들 교육비 줄이는 것은 쉽지 않

은 일입니다. 자녀들 학원 비 지출이 줄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교육비를 줄였다는 것은 소비위축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반증입니다.

 소비위축은 서민들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서울도심의 유명 백화점 명품관은 손님보다 직원이 많을 정도로 한산해 졌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중국 일본 관광객이 있어서 겨우 유지하고 있지만 국내 고객은 거의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이 지갑을 닫았다는 얘깁니다.

 부자들의 닫힌 지갑은 부자들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실 서민들 소비위축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입니다.

내수를 위축시켜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보다 근원적인 원인인 때문입니다.

경제 회복을 앞당기려면 무엇보다 내수 경기 활성화를 위해 부자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때문입니다.

 부동산문제도 부동산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집이 팔리지 않고 집값이 떨어지면 내수는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세수가 줄어들어 나라살림을 꾸리기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부동산시장이 살리는 일이 내수를 살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부자들 지갑을 열게 해야 합니다.

부자들 장롱 속에 숨겨 논 돈 보따리를 풀게 해야 합니다.

부자들이 돈 보따리를 풀게 하는 정책으로 부동산거래의 숨통을 틔워 줘야합니다.

꽉 막힌 피를 돌게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모든 정책을 그곳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닙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둔촌주공 동향 한줄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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