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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간지 닷새가 넘고 9월이 온지 나흘이 지났는데도

한낮 더위가 여간 아니다.

필시 그 못된 똥고집 때문이리라.

가는 세월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매사를 미적대고 삐딱하게 보기 일쑤인 미련곰탱이 같은 생각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파란하늘은 저만치 혼자 앞서가는 중이다.

9월에, 늦더위가 행패를 부려봤자 대체 얼마나 그러겠냐 싶은 모양이다.

지난여름, 그 대단한 분탕질은 이미 까맣게 잊은 투다.

가는 발걸음이 사뿐사뿐 새털같이 가볍다.

어제부터는 먹구름을 몰고 와 제법 차가운 비를 뿌리는 중이다.

바람이 분다.

아, 가을이 온다.

남자는 요즘 밤잠을 설칩니다.

2009년 초 둔촌주공에 투자용으로 매입한 아파트 때문입니다. 당시 10억 원이던 아파트를 사기위해 아파

트를 담보로 빌린 돈은 자그마치 5억 원. 그런데 주택경기 침체로 폭락한 집값이 7억 원. 전세보증금 2억

원을 공제 하고 나면 그야말로 깡통아파트인 셈입니다.

2008년 10월, 미국 발 금융위기로 집값이 반 토막이 났지만 회복을 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

았습니다. 불과 2~3개월 새 최고점을 회복했으니까요. 다시 한 번 2006년 광풍이 불 것 같은 기대 섞인

위기감에 허겁지겁 대출을 얻어 집을 샀습니다. 집값이 회복되면서 강남권재건축시장에 대한 투자가치도

덩달아 살아날 것으로 판단한 때문입니다. 과거 잠실시영아파트를 매입해 파크리오로 재건축한 투자 경험

이 크게 작용한 탓입니다.

남자는 아파트를 팔기로 했습니다.

대출금이자 감당이 버거운 것도 사실이지만 막대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결정을 하게 된 배경에는 집값

회복이 예전처럼 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섭니다. 재건축에 대한 투자심리까지 위축돼 설령 회복이

된다 해도 시간과의 싸움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란 생각에섭니다.

하루라도 빨리 손을 터는 게 외려 낫겠다는 것이죠.

여자는 요즘 밤잠을 설칩니다.

2008년 후반 미국 발 금융위기 때 헐값에 산 둔촌아파트 때문입니다. 2008년 초 9억까지 거래되던 아파

트를 5억7천만 원에 샀습니다. 그런데 2009년 순식간에 9억 원을 회복했다가 지난해부터 추락하기 시작

하더니 7억까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깡통아파트 꼴 났다고 아우성인 때 무슨 배부른 소리냐고 할

지 몰라도 이 궁리 저 궁리로 요즘 밤잠을 설칩니다.

여자는 아파트를 팔기로 했습니다.

시장에 내 논 가격 7억 원에 7백만 원을 더 깎아주고서 겨우 계약은 마무리 될 수 있었습니다.

더 떨어질지 모른다는, 그래서 급할 게 없다는 매수자와 장시간 줄다리기 끝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여자는 잠실의 새 아파트를 샀습니다.

아파트를 담보로 1억 원의 대출을 얻고 약간의 여윳돈을 보탰습니다.

10억 원이 훌쩍 넘든 아파트가 8억3천만 원 급매물 가격입니다.

결국 잠실의 새 아파트를 7억 원 남짓에 산 셈입니다.

길게 보면 둔촌주공이 훨씬 이득이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손해를 봤다며 울상일 때 나름 상당한 수익을 얻은 데다 이참에 평소에 원하던 새 아

파트로 갈아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섭니다.

아파트가격 하락이 내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착안한 거죠. 하락세일 때 가격차는 더욱 좁혀져서 일

거양득의 기회라고 본거죠.

남자는 분통이 터져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집을 팔고, 여자는 바닥시세를 일종의 기회로 보고 망설임도 없

이 집을 팝니다.

남자는 꿈을 이루지 못해 복장이 터지고 여자는 꿈을 이뤄 가슴이 터질 것 같습니다.

요즘 주택시장의 급매물로 나온 소유자 이야깁니다.

또 다른 남자는 단지 내의 큰 평형으로 갈아타기 위해 급매물을 자처하고, 또 다른 여자는 반 토막 난 시장

에서 호박을 넝쿨째 잡기위해 한시도 쉴 틈이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억장이 무너지고 다른 한쪽에선 기쁨으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위기라고 하고, 어떤 이는 기회라고 하는 주택시장 이야깁니다.

깡통주택, 하우스푸어, 주택시장이 거덜 나게 생겼다는 소리가 지천인데도 목숨부지가 어렵다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나름 틈새를 지혜롭게 헤쳐 가며 알토란같은 재산을 불려가는 살림꾼도 적지 않다는 얘깁니다. 세상어디에

고 양지와 음지는 꼭 있게 마련입니다.

한동안 바닥을 모르게 추락하던 집값이 다소 주춤해졌습니다.

급매물로 내 논 가격에 최소 1~2천만 원 더 후려쳐야 겨우 팔리던 풍경은 며칠 새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새로 출시되는 급매물도 부쩍 줄었습니다. 어제는 지난 8월에 팔린 것 보다 1천만 원 높은 가격의 34평조

차 팔렸습니다. 그 때문에 바닥다지기가 끝났다는 소문이 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라안팎의 형편, 대선주자의 한마디 한마디까지 모조리 꿰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 금융기관의 금리정책까지 어느 것 하나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돕니다.

미국의 증시상황에서 유럽 중국의 증시 등락까지 도대체 모르는 게 뭐가 있을까, 박식하고도 박식할 뿐입

니다.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 되고.

집값이 떨어지면 더 떨어질까 무섭고, 집값이 오르면 더 오를까 무섭습니다.

이런 사람 바닥에 집 사는 꼴 본적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 상투에 집 파는 꼴 본적이 없습니다.

바닥은 위기를 기회로 보는 이들에게만 보이는 법입니다.

바닥에 표시 따윈 따로 없습니다.

[둔촌주공 동향 한줄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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