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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프레임] 인플레이션의 추억

드라마 ‘사랑과 야망’은 1987년 첫 방영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총 98회라는 놀라운 방송 횟수에다 74%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골 방앗간 집 홀어머니가 상경해서 설렁탕을 팔아 대박을 터트리고 삼남매도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남매들의 사랑은 별로였던, 그런 줄거리였다.

재작년 리메이크됐던 ‘사랑과 야망’ 후반부에서는 1970년대 말 건설업에 뛰어든 둘째 아들 태수가 어머니 땅을 밑천 삼아 아파트를 마구잡이로 지어 올렸다가 분양이 안 돼 부도 직전까지 몰리는 장면이 나온다. 태수의 형 태준은 원래 몸담았던 회사로 찾아가 동생을 도와달라고 읍소하는데 이때 태준의 옛 부하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오늘밤 자정을 기해 유가가 50% 이상 인상됩니다.”

“환율 인상에 유가 인상, 부동산은 이제 때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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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의 추억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초반 이후에는 우리나 글로벌 경제에 인플레가 큰 부담이 된 기억이 드물었다.

당시 기억을 되살려보면 1980년에 이른바 2차 오일쇼크가 전 세계를 강타했다.

원유 가격이 치솟는 가운데 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석유 제품 가격을 꽁꽁 묶어놓았다. 정부가 결국 현실을 반영해 석유 가격 인상을 발표했고 이 조치는 바로 물가 상승으로 직결됐다. 덩달아 환율까지 상승했다. 1980년 한 해 동안 고유가 충격에 경제는 -2.2% 성장을 기록했지만 소비자물가는 28.7%까지 치솟았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되면서 투기심리가 부동산시장으로 일시에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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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앞을 다퉈 실물자산 투기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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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서 태수는 하루 만에 재고로 쌓여있던 미분양 물건 가운데 3분의 2를 몽땅 팔아치우면서 기사회생의 전기를 잡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태수처럼 우연하게 ‘돈이 되는’ 실물 자산을 갖고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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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를 투기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일부 계층들은 일확천금을 버는 행운을 낚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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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오히려 더 큰 피해를 입게 된다.

교과서적으로 얘기하면 인플레는 사람들이 보유한 화폐의 가치 하락을 의미한다. 화폐 가치 하락이 예상되면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꿔다가 매점매석 등 사재기에 나서게 된다. 사회 전체적으로 건전한 저축 풍조 조성을 방해하고 투기와 한탕주의를 조장한다. 인플레이션은 경제생활의 기초를 밑바닥부터 흔들어놓는다.

물론 원유와 곡물 가격 상승 등 전 세계가 직면한 최근의 소비자물가 상승은 해외 요인에 의해 촉발됐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강하다. 문제는 해외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점이다.

해외 요인에 의한 인플레 압력을 제외한다고 해도 광의통화(M2) 증가율은 지난 2월 12%대 후반 수준까지 증가했다. 수요요인에 의한 물가 상승 압박도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변동성이 심한 유가와 곡물 가격 상승 요인을 제거한 근원인플레이션율은 이미 2.8%까지 상승했다. 곡물이나 유가와 상관없는 이발 요금, 학원비 등 개인 서비스 요금마저 크게 들썩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물가안정’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물가안정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특단의 물가 대책들이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포퓰리즘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서민 물가안정을 위해 가정용 전기 요금을 인하하겠다는 식의 탁상행정은 곤란하다. 정부 통제 아래 있는 전기 요금은 이미 생산원가에 못 미쳐 여름 성수기만 되면 전력 수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비상이 걸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전기 요금을 낮추면 전기를 더 쓰라고 국민들을 부추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미 단행된 유류세 10% 인하 조치도 아쉬움이 남는다.

물가안정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의 경계는 명확해야 한다.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게 해서는 안 된다.

헨리 헤즐릿은 그의 저서 ‘경제학 1교시’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인플레이션은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씨앗을 뿌린다. 사람들에게 전체주의적인 통제를 요구하도록 하면서 결국 쓰라린 환멸과 좌절로 종말을 고한다.”

[이근우 매일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448호(08.03.26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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