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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하에 모질고 고약하기로 소문난 이번 겨울도,

가는 세월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는 모양이다.

 요 며칠 새 몰라보게 어깨가 축 늘어졌다.

부쩍 수척해진 모습은 뒷방차지 어르신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유독 새벽 찬바람만이 못내 아쉬운 듯 미련을 떨어보지만,

그마저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마냥 맥없는 짓이라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모양이다.

한층 봄기운이 오른 어제부터는, 아예 양지바른 비탈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 바쁘다.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다.

솜털 같은 바람결은 꽁꽁 숨었던 희망을 불러내 찌든 속을 풍선처럼 부풀게 한다.

 새봄이다.

연둣빛 눈부시게 아름다운 세상이다.

겨우내 짓눌렀던 두터운 허물일랑 훌훌 벗어던지자.

 자, 날개를 펴자.

그리고 세상을 훨훨 날아보자.

 국민행복시대의 기치를 내건 새 정부가 출범했다.

국민행복시대의 서막이 오른 셈이다.

 물론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어느 누가 행복을 마다할 것인가.

그러나 너무도 당연한데다 어쩌면 소박하기까지 한 국민행복이라는 단어가 왜 이리 낯설게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국민들의 시선은 결코 따뜻하다고만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야말로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면서도 저간의

형편이 녹록치 않은 현실 때문이다.

 또 역대 정권의 비슷비슷한 달콤한 구호에 식상할 대로 식상한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자칫 행복은커녕 상처만 키울지도 모른다는 염려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번 속지 두 번은 속지 않는다는 뭐

그런 거 말이다.

 국민행복시대로 가는 길은 험난할 뿐이다.

새 정부를 둘러싼 경제 환경은 암울하기만 하다. 위축된 글로벌시장과 악화된 내수,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

계부채와 하우스푸어 문제 등이 첩첩이 가로막고 섰다

 무엇보다 집값 폭락이 건설·건축 경기를 악화시킨데 이어 중산층 붕괴 위기 등 각종 금융·사회 문제로 번

질 조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대감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우선 어떡하든 이 침체국면을 벗어나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 컸을 것이다. 거기에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느

껴보지 못한 서민을 위한 행보가 진정성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크다.

 불통이라고 흠집을 낼 정도의, 새 대통령의 약속을 생명처럼 여기는 평소 신념도 한몫 했을 것이다. 틈만

나면 약속을 꼭 지키겠다면서 서민들의 손톱 밑의 가시를 뽑는데 온힘을 기울인다는데도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 대기업 총수들을 마다하고 중소기업 대표들을 먼저 만나 중소기업을 살리겠다는 약속을 한 점도

꽤나 감동적이다.

 그런가하면 취임식 행사도 가슴에 와 닿는다.

권력의 중심 아니면 엄두도 낼 수 없는 단상에 서민대표를 기꺼이 앉혔다. 서민들의 애환을 노래하는 대중

가수들을 단상에 올려 국민들과 한바탕 한풀이 하듯 박수치고 노래하게 한 점도 남다르다.

 설사 해프닝이라 해도 과소평가할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어찌됐든 솔깃하게 하고,

공감을 갖는 계기가 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오픈게임 축에도 못 낀다.

켜켜이 쌓인 시커먼 응어리가 털끝만큼이라도 줄어들 가능성조차 없다.

물론 이 정도로 국민행복시대가 열릴 리는 만무하다.

고작, 어? 시작이 좀 다르네? 할 뿐이다.

 새해 들어 강남재건축에 부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개포주공, 둔촌주공, 가락시영에 일기 시작한 바람이 잠실5단지까지 번져 엊그제는 하루에 5건이나 거래

됐다는 소식이다. 특히 둔촌주공은 빨라질 진행과 높아진 투자 효율이 폭넓게 확산되면서 2월 거래된 건수

가 20건을 훌쩍 넘겨 사뭇 호황기로 착각 될 정도다.

 설을 전후해서 수천만 원씩 가격이 뛴 물건까지 추격매수가 이루어지면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바닥 론

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오랜 주택시장 침체로 중산층이 몰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무색할 지경이

다.

 하지만 사정을 깊이 있게 알고 보면 아직 찻잔속의 태풍일 뿐이다.

지난 2년여 수억씩 하락해 반 토막이 나다시피 한 집값이 겨우 5천만 원 남짓 상승했을 뿐이다. 하락폭

이 10이라면 이제 겨우 1~2를 회복했다는 얘기다. 갈 길이 구만리 같은데 고작 모퉁이 두엇을 넘었을 따름

이다. 여전히 하우스 푸어는 숨을 헐떡이고, 가계부채는 쉴 새 없이 중산층의 목덜미를 누르고 있다는 말이

다.

 “지금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소비 위축 등 상당한 문제는 부동산 가격이 반등하면 저절로 해결된다.”

“지금까지 떨어진 집값이야 그렇다 쳐도 여기서 더 떨어지면 정말 우린 거리에 나앉아야 한다.”

위는 전문가들의 소리이고, 아래는 하우스 푸어를 포함한 집 가진 이들의 소리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길거리에 나앉을지 모른다는 푸념에, 이들을 포함한 우리 경제의 문제 해결은 부동

산 가격 반등에 있다는 소리다.

하우스 푸어, 가계부채, 소비 위축 등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의 해법이 결코 둘이 될 수 없다는 뜻이

다.

 집값이 풀려야 대한민국이 풀린다.

다행인지, 강남재건축이 불쏘시개가 됐다.

서풍만 불어오면 불길이 확 살아날지도 모를 일이다.

하루빨리 새 정부가 종합적인 주택 경기 활성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까닭이다.

그 지긋지긋한 사후약방문 소리를 두 번 다시 듣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그곳이 국민행복시대의 출발점이다.

때를 놓치면, 국민행복시대도 747꼴 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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