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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집값, 버블이 꺼지는 게 아니라 바닥이 꺼지는 중 … 20% 입주도 힘겹다 [중앙일보] 20일 부산시 해운대구. 곳곳의 견본주택에는 '무제한 전매 가능'이라는 큰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한 분양 대행사 관계자는 "부산은 투기과열지구여서 1년간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지만 분양한 지 1년이 넘어 저절로 전매제한에서 풀린 장기 미분양 아파트가 많다"고 설명했다. 전매금지 규제가 필요없는 셈이다.

같은 날 만난 김모씨는 10년 전 4억원에 산 부산시 해운대구 달맞이고개의 75평 고급 빌라를 지난달 1억6500만원에 팔았다고 했다. 그는 "열 달을 끌다 급매물로 처분했다"며 "분양받은 주상복합아파트의 잔금을 마련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부산.대구 등 지방 주택시장에서 '서바이벌(생존)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건설업체들은 새 아파트를 팔기 위해 안간힘이고 아파트를 분양받은 수요자들은 새 집과 헌 집 중 한 채라도 빨리 처분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시장 침체로 소비자.업체 모두 고민=민모씨는 2004년 분양받은 부산시 수영구 아파트의 입주 시기가 다가오자 고민에 빠졌다. 민씨는 "입주 직전 아파트값이 오르면 팔려는 생각이었는데 값이 오르기는커녕 손해를 보고 처분하려 해도 거래가 안 된다"며 "살던 집이 안 팔려 2주택 양도세 중과를 맞기보다 계약금을 떼이고 해약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의 경우 기존 주택시장의 침체로 거래가 크게 위축되면서 두세 달 동안 진행되는 입주기간 내 입주율이 20%를 밑도는 단지가 대부분이다. 최근 부산에서 입주한 아파트 중 가장 인기가 좋다는 금정구 구서동 롯데캐슬(2월 입주)도 입주기간 내 입주율이 50%를 밑돌았다. 입주율이 낮은 것은 계약자뿐 아니라 건설사에도 큰 부담이다. 분양 촉진을 위해 초기계약금은 줄이고 대신 잔금 비중을 최대 60%까지 늘린 업체가 많기 때문이다. 2억원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은 계약자가 입주기간 내 입주하지 못할 경우 최고 월 200만원가량의 연체료를 물어야 한다. 수영구의 새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고 있는 서모(44)씨는 "벌써 두 달 동안 80만원의 연체료를 냈다"며 "언제 기존 집이 팔려 이사를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불안해 했다.

건설사는 잔금이 예정대로 들어오지 않음에 따라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등 자금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D건설 주택사업본부장은 "부산 사업에서 이익을 포기한 지 오래됐다"며 "700가구 단지에서 예정기간 내 입주율이 20%에 그치면 건설사는 1000억여원을 딴 데서 빌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대구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 분양대행업체 사장은 "대구에서는 연말까지 1만2000가구가 완공되는데 연말께는 입주대란이 우려된다"며 "잔금을 못 받는 업체뿐 아니라 입주를 못하는 소비자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연체료 부담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살아남기 안간힘=부산.대구의 주택업체들이 생존게임을 시작했다. 미분양 아파트를 처분하기 위해 분양가를 깎아주는 고전적 방법에서부터 색다른 마케팅까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부산시 해운대구 센텀시티 15블록에서 주거용 오피스텔 521실을 내놨던 한화건설은 당초 20%였던 계약금을 1%로 낮췄다. 200만~300만원의 계약금만 있으면 입주까지 한 푼도 안 내도 되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다. 부산에서는 지난달 서구 암남동에 있는 동일스위트가 분양가를 평당 100만원 내린 뒤 분양가를 깎아주는 '떨이'도 잇따르고 있다.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서도 계약금 5%, 중도금 무이자 대출 등을 내세운 특별분양 안내 플래카드가 견본주택마다 붙어 있다. 직.간접적인 가격할인 외에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색다른 마케팅도 나오고 있다. 대구에서는 문화마케팅이 한창이다. 19일 수성구에 견본주택을 열고 366가구 분양에 들어간 보국건설은 예비 고객 1000여 명에게 공연 초청장을 최근 보냈다. 코오롱건설은 지난달 24일 밤 대구 인터불고호텔 컨벤션홀에서 사업설명회를 하면서 인기가수들을 초청해 콘서트를 열었다.

현진은 경남 거제시 아주동에 분양 중인 아파트(34~47평형 420가구) 계약자들에게 출산장려금(최고 1000만원)을 지급하면서 눈길을 끌려고 한다.

동문건설 김시환 상무는 "지금은 부산 등지에서 공급 과잉 후유증이 있지만 건설사들이 새 사업을 주저하고 있어 2008년께는 공급 부족으로 집값이 다시 앙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대구=함종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