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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일월드컵 직전으로 기억되는데 일본 시사주간지 '아에라'에 '전시시설의 성공적 변신'이라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일본은 1980년대 제조업으로 세계최강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박람회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빈번한 행사를 치루어냈고 일본국민 특유의 헌신적인 참여로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과도한 시설경쟁과 1990년대의 불황을 맞으면서 지자체마다 한껏 욕심을 내서 건설한 전시시설들이 대부분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2. 지자체의 예산을 축내면서 버티던 전시시설들 상당수가 택한 전략은 특정기업의 쇼룸 역할을 하는 상설전시관화와 물류기지로의 전환이었다.

대형전시시설들은 그 자체로 Digital Warehouse 로 쉽게 변신이 가능했다. 건물의 기본적인 구조가 비슷하고 훌륭한 유틸리티가 구비되어 있으므로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개축이 가능했고 거대한 주차장은 컨테이너박스 야적장으로 사용되었다.

전시시설 자체가 편리한 교통환경을 인프라로 구축하여 놓았으므로 큰 추가비용이 필요 없었다.


3. 많은 분들이 왜 하필 그런 상상을 하느냐 하겠지만 나는 이 과정이 일산에서 재현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한다. 일산,파주를 말할 때 통일을 대비한 '물류도시'라는 말이 등장하면 별로 기쁘지가 않다. 자유로에 트레일러와 화물차가 버글거릴 것이 꺼려져서이다.

일본의 거대 전시시설들이 장기적인 적자에 빠지면서 처음에 시도된 것 중의 하나가 '전시와 물류의 원스톱 서비스'라는 캐치프레이즈였다. 일부의 전시시설은 남겨두고 나머지를 물류창고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 보류된 영종도의 전시시설은 처음부터 그런 컨셉트로 출발했다. 그러다가 이것도 여의치 않으면 결국 전시단지 전체가 물류기지화 된다.


4. 물류창고업은 전시산업에 비해 분명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업종일 것이다. 그래서 도시의 성격에 따라 이런 전환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겠다.

전에 어떤 분이 영종도의 전시장은 결국 화물청사로 쓰일 것이라고 얘기한 것이 그런 경우이다. 그러나 일산에 물류기지가 들어선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자유로 이곳저곳에 트레일러가 붐비게 되면 일산의 깨끗한 이미지는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다.


5. 그 기사에서 지자체장의 인터뷰 중에 '가로등을 제 때 갈아줘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이 말은 뉴욕시장인 '루돌프 줄리아니'의 캐치프레이즈로 알려진 말이다.

뉴욕의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낮춰 뉴욕에서 인기없는 공화당 출신임에도 장기집권을 한 줄리아니가 선거에서 꺼내든 카드는 사회학자 제임스 윌슨이 말한 '깨진 유리창 이론'이었다. 깨진 유리창 하나, 꺼진 가로등 하나가 거리를 슬럼화시킨다는 것이었다.

'깨진 유리창'은 민간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고 '꺼진 가로등'은 시청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시청은 단순히 갈아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 때' 갈아줘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줄리아니는 제 기능을 못하면서도 한 달씩 방치되던 가로등 전구들을 단 하루만에 갈아치우는 기동팀을 운영했다. 대신 시민들은 자신의 주변에 파손되어 무관심하게 방치되던 것들을 즉시 보수해야 했고 그렇게하지 못할 경우 벌금을 내야했다.

사소해보이지만 모든 가로등이 항상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도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줄리아니는 보여주었다. 경찰의 증원없이도 범죄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6.일본의 그 지자체장은 전시회장 운영비를 시재정이 보조하면서 도시의 적절한 유지보수가 제 때에 이루어지지 못해 슬럼화 되어가기 때문에 시의 장래를 위해서도 더 이상 전환을 미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 일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럴 경우 적자보전을 위한 시재정의 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적자를 핑계삼아 물류시설 등 도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용도로 전환하려는 시도도 저지해야 한다.



7. 그러기 위해서는 확장공사를 하게 되더라도 - 확장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 부대시설을 직영하기보다 최대한 민간에 넘기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킨텍스 사장이 밝힌대로 킨텍스는 전시시설 자체의 수익보다는 부대시설의 수익에 더 큰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직영을 과감히 포기하고 넘길 수 있는 것은 희망하는 민간업체에 모두 분양하는 전략을 택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전시시설의 수익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초기자금을 충분히 확보하여 건설비와 초기투자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또한 경영리스크가 현저히 분산될 수 있다. 조금 불황을 맞아도 전시시설 자체에만 신경쓰면 되고 영업규모가 줄어드니까 경영이 슬림해진다.



8. 다른 하나의 장점은 전시시설에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들어선 민간 상업시설들로 인해 전시산업으로 인한 적자가 쌓일 경우에도 물류기지로의 전환이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코트라와 경기도는 일본의 제트로와 정부가 그랬듯이 물류기지로의 전환 이후 미련없이 손을 털고 나갈 수 있다. 아쉬울 것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상인들의 상권을 인정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할 경우에 그런 전환은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상인들은 결코 물류기지화를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경기도와 코트라가 발을 뺄 수 없도록 끝까지 붙잡아둘 수 있는 방법을 미리 강구해야 한다.



9. 왜 하필 안되는 경우만을 골라서 거론하느냐는 분도 있겠지만 우리는 여러가지 경우를 미리 대비하여야 한다. 철수작전없는 작전은 작전이 아니다.

나는 전시,컨벤션산업을 비관적으로 본다. 이곳에서는 결코 환영받지 못할 견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 근거없는 지역 시비를 벌이고 엉뚱한 덮어씌우기가 난무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후곡처사'님이 말씀하신 '플랫폼 이론'에는 동의한다. 다음 번에 언급을 할 예정이었는데 미리 말씀하셨다. 일산에 있어서 킨텍스, 한류우드의 역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플랫폼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 분처럼 이 프로젝트가 희망적이고 낙관적으로 보였으면 참 좋겠다. 그런데 그렇게 될 것 같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