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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그루도 남기지 말고 옮겨서 살려내라!”

아파트 재건축공사가 한창인 서울 강동구(구청장 신동우)에서 사상 최대 ‘나무 옮겨 심기 작전’이 벌어진다. 서울 동쪽 끝자락의 ‘푸른 숲속 아파트’로 이름을 날리다 재건축을 앞둔 고덕주공 단지 내 나무 5만 그루를 모두 살려내기로 한 것. 강동구가 거대한 나무 이사 작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한 것은 “저 나무들 다 어쩌냐”는 주민들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6일 고덕주공 3단지 아파트 상가 앞. 페인트가 벗겨진 아파트와 상가들은 한눈에 낡아보였다. 그런 초라한 모습을 완벽하게 숨겨준 것은 숲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단지 곳곳에는 나무들이 빽빽이 심어져 있었다.

노란색으로 갈아입고 겨우살이를 준비중인 은행나무가 즐비했고, 봄에 연분홍 꽃비를 뿌려댄 뒤 검붉게 물든 벚나무 잎이 흩날린 단지 안은 늦가을 풍경이 물씬했다. 주민 김미순(52)씨는 연방 “아깝다, 아깝다…”며 혀를 쯧쯧 찼다. “봄에 벚꽃 피고 가을에는 낙엽 지는 풍경이 워낙 고우니 강동구 사람들은 멀리 꽃놀이 갈 필요가 없어요. 그런데 재건축 공사로 아파트 다 허물면 20년 넘게 자라며 뿌리내린 나무들이 죽어갈 것 아니겠어요?”

1983년 12월 준공된 고덕 주공아파트 단지의 조경은 하나의 ‘생태공원’이자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문비나무·무화과나무·석류나무·측백나무·꽃사과·느티나무·배나무·산철쭉 등 종류도 가지각색인데다 잎도 무성한 나무들이 5층 아파트보다 더 크게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는 장면은 압권이다. 일부 단지에서는 동(棟)과 동 사이에 널찍한 잔디밭을 두고, 단지와 단지 사이에 야트막한 구릉을 만드는 등 지금 아파트 뺨치는 친환경적인 조성 기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재건축이 시작되면 노후된 아파트가 헐리면서 20년 넘게 사람들에게 녹지공간을 제공해주던 나무들의 목숨도 바람 앞의 촛불이 될 운명이었다. 고덕주공 1단지는 지난 3월 이미 재건축 공사에 들어갔다. 옛 1단지터는 방음벽을 두른 채 이미 거대한 공사판으로 변해버렸다. 하지만 공사장과 8단지 아파트가 마주보는 길에 줄지어 늘어선 키 큰 가로수들은 여전히 한 폭의 풍경화 같은 모습이다.


▲ 울창한 나무들로 뒤덮인 강동구 고덕주공 아파트. 막바지 단풍과 낙엽이 어우러진 요즘은 웬만한 도심공원 못지 않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허도행 강동구 푸른도시과장은 “재건축할 때 옛 단지의 나무들을 보호하라는 별도의 강제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사기간 중 임시로 옮겨 심는 보존공간(나무은행)도 마땅치 않아 그동안 아름드리 나무들이 꽤 많이 잘려 나갔다”고 말했다.

고덕주공 단지의 ‘나무 이사작전’이 가능했던 것은 별도의 보존공간을 따로 마련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재건축 공사가 1단지에서 7단지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될 계획이라, 공사 기간 동안 임시 거처를 마련할 필요 없이 순차적으로 단지별로 나무를 옮겨 심기만 하면 된다. 1단지 재건축공사가 마무리되는 2009년 6월쯤 인근 2단지의 나무들을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에 옮겨 심는 식이다. 이후 2단지 공사가 끝나면 3단지의 나무를 가져와 단지 조경을 하면 된다. 구는 고덕주공 아파트(2~7단지)를 시작으로 관내 모든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 이 방법을 적용할 방침이다. 최용호 부구청장은 “자원재활용에 조경비용 절약이라는 두 가지 효과가 있다”며 “전국의 재건축 공사장에 진작 도입했어야 했다”고 말한다.

강동구는 조경·생태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가 그룹을 구성해 온전히 옮겨 심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재건축 사업자들에게도 이를 널리 알리기로 했다. ‘나무 옮기기 실험’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경우 다른 자치단체에도 이를 널리 전파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