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뱅 비망록] ‘먼저, 畏부터 시작하라’ 건설업계 목숨 건 생존경쟁
[부동산뱅크 2004/12/10 - 조회:4,724]
중견건설업체 창업주, 타사 전문경영인 영입해 경영권 위임하기도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나라 왕 쾌(快)는 재상 자(子)씨를 매우 총애했다.
키가 7척이 넘는 재상 자씨는 군대 지휘 능력도 뛰어났고 매사에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었던 까닭에 유약한 면이 강했던 연왕 쾌는 재상 자씨의 말이라면 뭐든지 다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렇다보니 실질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재상 자씨가 왕이 되고자하는 욕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 재상 자씨는 이웃의 강국 제(齊)나라 군대의 도움을 얻어 결국 연왕 쾌를 죽이고 연나라 왕을 자칭하는데 이른다.
하지만 왕족의 혈통도 없는데다 아무런 공적도 없이, 그것도 외세의 힘을 빌어 즉위한 가짜 왕을 백성들이 인정할 리는 없는 법. 재상 자씨를 피해 도망쳤던 태자는 스승 곽외(郭畏)를 따라 의군을 일으켰고, 전 백성의 지지를 얻었던 태자는 가짜 왕 자씨를 죽이고 연나라를 병합하려던 제민왕(齊湣王)의 제나라로부터 망국 직전의 연나라를 구해내는데 성공했다.
태자는 피폐된 궁궐에서 즉위식을 갖고 연소왕(燕昭王)이 됐지만, 가뜩이나 약소국이었던 연나라는 변란으로 인해 나라살림이 딱할 정도로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특히 당시 중국 국가 중 가장 인구가 적었던 연나라는 인재가 부족했기 때문에 연소왕은 어떻게 하면 인재를 모으고 나라를 부강케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정도였다.
그러자 스승 곽외는 연소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먼저 신(臣), 외부터 시작하십시오. 대왕이 보잘 것 없는 신 외를 섬기신다면 천하의 모든 뛰어난 인재는 대왕을 우러러 볼 것이며, 우리 연나라로 올 것입니다” 그 날부터 연소왕은 스승 곽외의 침실로 찾아가 곽외가 기침할 때 까지 시립했으며, 무릎을 꿇고 같이 수라를 들었으며, 침수에 들어가기 전까지 언제나 공손하게 배우는 자세를 취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또 연소왕은 도읍지에 황금으로 만든 누대를 짓고, 어진 인재가 찾아오면 극진히 대접했다. 이렇게 일국의 왕이라도 뛰어난 인재라면 부모처럼 섬긴다는 소문은 중원에 퍼지게 됐고, 웅지를 품은 각 나라 인재들이 하나 둘 연나라로 모이기 시작했다.
만년 약소국 연나라가 중원의 강국으로 발돋움하기까지는 10년이 넘지 않았다. 그토록 애타게 찾던 인재들로 넘쳐나게 된 연나라는 10년이 지나자 나라의 힘을 다시 크게 떨치고 제나라를 쳐 제민왕을 참수함으로써 부왕의 원수도 갚을 수 있었다. 이렇게 스승 외부터 섬겨서 인재를 중용했던 연소왕은 춘추-전국시대 1,000년을 통틀어 언제나 약소국 신세를 면치 못했던 연나라를 전국칠웅(戰國七雄) 중 하나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IMF시절을 방불케 하는 시장상황으로 인해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경영 위기가 예상되는 건설업계에서도 이 같은 전국시대의 고사 ‘외부터 섬겨라’가 도용되고 있다. 한마디로 회사를 재건할 수 있는 인재라면 오너조차도 기꺼이 ‘섬기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중견건설업체 ㅇ사는 그간 공격적인 경영으로 유명했던 회사다. 적은 자본으로 회사를 설립한 창업주는 투자자금이 부족했음에도 전투적인 경영전략을 펼쳐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기업 못지않게 활발한 물량 공급을 했던 회사. 올해 들어선 충청권을 중심으로 500세대 이상 대단지 아파트도 잇따라 공급해 이젠 이 회사 창업주도 어엿한 업계 1, 2위를 다투는 디벨로퍼다.
하지만 최근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모든 시행사들이 겪고 있는 재무상황 악화는 이 회사 역시 예외는 아니다. 대단지 분양실패와 자금 유동성 악화에 따라 최근 들어선 유망 택지지구 아파트단지 시공권마저 포기할 정도로 회사 사정이 나빠진 것. 한때 디벨로퍼 신화로 불리던 이 업체는 ‘위기설’마저 파다한 실정이다.
그러나 이 업체의 오너는 마지막까지 도전정신을 버리지 않았다. 지난 부동산 호황기 당시 시장에 고급아파트 붐을 일으켰던 대규모 건설업체 ㄹ사 출신 전문경영인을 ‘회장’으로 영입하고 경영권 일체를 위임한 것이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오너가 아닌 CEO의 한계와 혹시 모를 권력누수를 막기 위해 오너 스스로가 사장이 되어 깍듯이 회장님을 ‘모시고 있는’ 상태다. 회사만 재건할 수 있다면 경영권도, 회장직도 양보할 수 있다는 게 이 회사 오너의 심정인 것이다.
과연 건설업계에서도 고사에 나오는 인재 등용의 묘를 살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부동산뱅크 이동훈기자 / inkeiser@neonet.co.kr
< Copyright ⓒ 부동산뱅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