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명도의 가벼움
[부동산뱅크 2006/08/09 - 조회:7,168]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에 4층짜리 상가주택을 임대하여 노후 생활비로 충당하고 있는 박평안(가명, 54세) 씨가 작년에 문의를 해 온 적이 있었다. 2003년 10월 1일부터 3년간 계약으로 2층 100평을 카페로 임대하였는데, 임차인이 임대료를 계속 연체하고 있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스러워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임대조건은 보증금 5천만 원, 임대료 2백5십만 원, 관리비 3십5만 원이고 부가세와 실비 정산되는 전기요금 등을 합하면 월 청구액이 3백5십만 원 정도 나온다고 했다. 미납차임은 벌써 3천만 원에 육박하는 정도까지 불어나 있었으며, 아무리 독촉하고 내용증명을 보내도 임차인은 곧 주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명도소송을 하자니 건물 1층 절반과 3층 일부가 오랫동안 비어 있는 상황이고 임차수요는 거의 없어서 공실이 느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처럼 점유이전금지가처분신청 및 명도소송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명도 소송은 임대인에게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선택이다. 한 가지씩 살펴보자. 민사소송 평균 소요기간인 8개월을 적용할 경우, 임대보증금으로 충당 못하게 되는 미납차임은 1천6백만 원 (보증금 5천만 - 미납차임 3천만 - 부당이득 3백5십만 x 8개월 - 원상복구비용 8백만)에 달할 것이다.
다음으로 수백만 원 이상의 법무 비용과 8개월간 심적 부담 (재판에 대한 부담과 특히 건물 내에서 피고를 계속 마주쳐야 하는 부담)은 물론, 판결 후 텅 빈 2층을 지켜봐야 하는 쓰라림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임차인은 그다지 부담스러울 것도 없다. 임차인의 입장에서 보면 보증금이 일부 남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임대료가 밀려도 영업지장이 바로 생기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혹시나 명도소송을 당했다 하더라도, 판결 전까지만 완납하면 다시 재계약 해서 계속 장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옳고 그름은 일단 접어 두고 생각해보자. 양쪽 입장을 생각해보면 불리하고 아쉬운 쪽은 임대인이다. 임차인은 제때 임대료 내고 제때 명도해 주지 않아도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 오히려 임대인의 경우 명도소송을 하기도 부담스러운 상황으로 바뀐 것이 그저 놀랍기만 할 따름이다. 이런 경우는 의외로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으며, 박평안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만약 더 좋은 임대 기회가 있다면 과감하게 명도를 해도 좋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명도소송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자. 과연 명도소송 말고는 임대인이 선택할 방법이 없는 것일까? 과연 명도소송이 모든 임대차분쟁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쓸 수 있는 당근과 채찍은 생각보다 많다.
먼저 미납차임을 완납하는 조건으로 향후 임대료를 할인해 주겠다고 회유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명도소송 시작되면 향후 양수도 및 전대차에 절대로 동의할 수 없으니, 권리금을 회수할 생각은 말라’고 통보하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또한 미납차임을 완납하면 그간의 연체 이자(계약서에 명시된 경우)를 할인해 주겠다고 하는 것, 그리고 경우에 따라 단전을 실시하는 것 등이 그 일부 예이다. 박평안 씨의 경우에 적용해보자.
박평안 씨가 임대해 준 카페의 경우 인테리어가 많이 되어 있다고 했다. 시설비나 권리금이 적지 않을 듯해서 확인해보니, 임차인이 전 임차인에게 1억 원 정도를 권리금으로 지급했다고 했다.
일단 박평안 씨에게 명도소송하기 전에 (사태의 심각성을 임차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점유이전금지가처분신청을 먼저 할 것을, 그와 동시에 ‘향후 양수도 및 전대차를 불허’하는 내용증명을 보내도록 자문했다. 그리고 ‘양수도 및 전대차 허용’을 임차인이 부탁해오면, 임차인에게서 미납차임과 단전 동의각서를 받은 후에 한하여 합의해 주도록 자문했다. 소위 말하는 ‘협상카드 바꾸기’였다. ‘양수도 불허’라는 카드를 ‘단전’이라는 좀 더 직접적인 카드로 바꾼 것이다. 물론, 단전 동의각서는 임차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해서는 그 효과를 보기 어렵기에 그 문구 또한 자세하게 설명해 주어야 했다. 단전 동의각서는 실무상 요긴하게 사용될 수 있는 강력한 협상카드이기 때문에 제대로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BJR(‘배째라’)에 있어서 임차인의 BJR은 임대인의 BJR과 매우 다르다. 임대인의 BJR은 기존 타 임차인의 동요와 이에 따른 연체의 증가(보증금반환에 대한 불확신으로 인해 임차인은 차임을 연체시켜 만기 시 보증금과 상계 처리시키려 함), 건물주에 대한 신인도 하락 및 주위 중개업소의 외면으로 연결되기 쉽다. 반면에 임차인의 BJR은 불이익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임차인 자신 소유의 재산이 거 의 없는 경우, 임차인이 받을 불이익은 양심의 가책 정도라고나 할까. 따라서 임차인은 계산상으로 유리하면 BJR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계산상으로 불리하면 절대 BJR을 선택할 수 없게 된다. 임차인의 BJR은 임차인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솔직하고 합리적인 선택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임대인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임차인이 BJR을 선택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또는 포지션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협상카드(당근과 채찍)를 써서 그 상황을 유지시키는 것이 효율적인 임대차 관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김유석 렘스자산관리 이사 cpayusu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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