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이제 바닥 찍고 ‘턴’?
[부동산뱅크 2007/05/31 - 조회:12,000]
“이보다 더 나빠질 게 있겠어요?” 깊은 터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던 아파트시장에 한 줄기 빛이 스며들고 있다. 지난해 11.15대책 발표 이후 근 반 년간 하락장을 펼쳐 왔던 아파트값이 지난 3주간 드디어 하락폭을 줄이며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부동산뱅크 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3주 신도시에서 첫 마이너스 주간 변동률을 기록한 이후 전국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아파트시장이 5월 2주 -0.07%, 5월 3주 -0.04%, 5월 4주 -0.03%의 변동률을 나타냈다. 서울과 5대 신도시 역시 같은 기간 각각 -0.13%, -0.05%, -0.04%와 -0.20%, -0.10%, 0.01%씩 움직이며 낙폭을 좁혀 가는 양상을 띠었다.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던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은 지난 5월 4주 주간 변동률에서 깜짝 반등을 하기도 했다. 지난 1월 4주 -0.11%의 하락률을 보인 이래 무려 16주간이나 하락장을 연출했던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이 0.14%나 뛰어 오른 것이다.
이에 집값이 드디어 바닥을 치고 고개를 내미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실제 잠실주공 분양권을 주로 취급하는 K공인 관계자는 “불과 1~2달 전만 해도 급매물도 소화를 못했지만 5월 들어서는 분위기가 바꼈다”며 “지금 가격이 최저가 아니냐는 생각에 나와 있던 급매물이 모두 거래됐다”고 전했다.
지난해에 비해 최고 20% 가량 가격이 빠진 잠실주공5단지 또한 최근 들어 저가매물이 소진되며 추가 하락의 우려를 씻어냈다. 송파공인 최명섭 대표는 “제2롯데월드의 건축허가가 다음달로 임박했다는 소식에 매수 문의가 늘어난 게 사실”이라며 “저가매물 외 거래는 아직 없지만 가격은 개발 호재를 발판 삼아 5,000만~6,000만 원이 상승했다”고 귀띔했다.
시장 분위기에 맞춰 함께 웅크렸던 중개업자들의 영업 활동도 보다 활발해지고 있다. 집값이 당장 오르지는 않더라도 더 이상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적극적인 매수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1~4월까지 총 9건이 거래됐던 잠실주공5단지는 5월 들어 보름만에 무려 9건이 거래된 상태다.
빛 한줌 들지 않을 것 같던 부동산시장의 예상 외 반응을 두고 시장에서는 오는 12월 치러질 대선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선을 의식한 장밋빛 공약들에 수요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 특히 온갖 세금 및 재건축 관련 규제로 겹겹이 둘러싸인 강남권 주택시장은 대선을 집값 상승의 호재로까지 여기고 있다.
개포동 개포공인 채은희 대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재건축 규제 완화 관련 발언에 따라 지금의 상황은 최악이고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집주인 또는 수요자들 사이에서 일고 있다”고 말했다. Y공인 관계자 또한 “지금은 간간히 나오던 급매물마저 끊긴 상태”라며 “더 이상의 저가매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집주인들이 앞으로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대선이라는 변수가 생각보다 파급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차기 정권에서 집값 급등이라는 악재를 무릅쓰고 이미 시행 중인 정책들을 변경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또 대선이 있었던 지난 1992년, 1997년, 2002년의 연간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은 -3.6%, 1.3%, 25.1%로 전년도의 -7.2%, 10.0%, 18.9%와 비교해 딱히 ‘대선효과’가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막연한 기대감만 부추기는 대선보다는 당장 오는 6월 발표할 분당급신도시와 9월 이후 시행예정인 분양가상한제, 청약가점제 등이 앞으로의 집값 향방을 좌우할 가망성이 크다.
우선 화성 동탄신도시를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분당급신도시 추가 발표는 상반기 아파트값을 움직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사실 분당급신도시의 위력은 지난해 10월 이미 선보인바 있다. 인천 검단지역을 신도시로 개발한다는 발표에 일대 집값이 요동을 쳤던 것이다. 몇 달째 수요자에게 외면을 받았던 미분양 아파트가 순식간에 팔리는 촌극을 빚으며 추병직 건설교통부 전장관까지 물러났지만, 당시 인천 서구 아파트값은 발표를 전후해 평당 538만 원에서 557만 원으로 3.5%의 주간 변동률(10월 마지막 주~11월 첫 주)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인천시 전체 아파트값은 1.4% 올랐다.
그런데 이 같은 움직임은 올해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분당보다 큰 분당급신도시 후보지로 언급된 광주 오포, 용인 모현 등지의 집값이 폭등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경기도에서 추진 중인 명품신도시 지정까지 맞물리며 일부 지역에서는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물론 돈줄 옥죄기 정책에 지난해와 같은 폭등장세를 펼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분당급신도시, 명품신도시 등의 개발계획 발표가 침체된 아파트시장에 반전을 이끌어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위해 발표된 분양가상한제와 청약가점제 역시 단기적으로는 집값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싼 값에 아파트를 공급하는 취지는 좋지만 공급이 시차를 두고 이뤄지기 때문에 4~5년 이내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청약가점제 시행 초기에는 점수가 어중간한 사람들이 본인의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대거 청약시장으로 몰려 과열 양상을 빚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세중코리아 김학권 대표는 “제도가 완전히 자리잡을 과도기 동안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청약시장이 뜨거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렇듯 청약시장이 과열되면 경직돼 있는 아파트시장도 한결 부드러워질 전망이다. 김학권 대표는 “4~5개월간 시장이 침체돼 있던 상황에서 청약시장이 먼저 물꼬를 트면 아파트시장도 회복 기미를 보일 것이다”고 말했다.
여기에 점수가 안 돼 청약을 포기한 사람들의 기존 아파트시장 행렬도 짚어봐야 한다. 점수가 낮은 실수요자 위주로 100% 계약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최근 수도권 분양시장을 감안할 때 추후 이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러 변수에도 불구하고 아직 집값 상승을 확신하기는 이르다. 정부의 적극적인 돈줄 죄기와 보유세∙양도세 강화로 단기간에 상승세로 전환하기는 힘들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지금이 내 집 마련의 최적기라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집값 상승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이상의 집값 하락은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가격이 떨어지기 위해서는 매물이 쏟아지고 모든 거래가 멈춰야 하지만, 저가매물 위주로 거래가 되고 이제는 그나마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금 사도 최소한 손해는 안 본다는 생각이 전체 시장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편, 아파트를 거주에서 소유 개념으로 획기적으로 바꿀 것으로 기대됐던 반값 아파트는 공염불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오는 10월께 안산 신길지구 또는 군포 부곡지구 중 한 곳으로 시범공급이 이뤄지지만 규모가 400가구에 그치는 탓이다. 앞으로의 공급 계획 역시 불투명하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현재로써는 400가구 공급 계획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실상 수도권에 반값 아파트를 공급할 땅도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 앞으로의 부동산시장에서 변수가 되지 못할 것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부동산뱅크 박선옥 기자 pso9820@neo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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