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와 경칩사이,

봄이 오는 길목이다.

 

 바람이 차다.

내내 영하권을 맴도는 꼭두새벽은 아직 한겨울이나 매한가지다.

대동강물이 풀린다는 절기만 믿고 서둘듯 동면에서 깨어난 개구리는 자칫 세상구경도 못하고 도로 침대 속

으로 들어가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길목은 벌써, 사뭇 북새통이다.

나른한 햇살, 아른아른 아지랑이.

솜사탕 같은 바람결을 타고 온 꽃망울 터지는 소리, 나뭇가지에 물오르는 소리.

연둣빛 물감을 뒤집어 쓴 먼 산을 감돌아 끝도 없이 피어나는 연분홍빛 희망 등.

채 영글지도 않은 그리움들이 버선발로 뛰쳐나와 발 디딜 틈이 없다.

 

 고깟 철지난 찬바람 따위에 주눅들 까닭이 없다.

요 모퉁이만 돌면, 새봄이다.

 

 그놈의 바닥 론은 배알머리도 없는 모양이다.

툭하면 불거졌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기 예사다.

지난 2년여 지독한 침체 속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고개를 들다 몇 번이나 체신을 구겼는지 모른다. 그 덕에

신뢰는 땅바닥까지 추락했지만, 그게 뭐 대수냐는 투다.

 

 또 바닥 론이 고개를 들었다.

지난 한달 여 강남재건축에 부는 바람 탓이다. 매수문의가 늘고 호가가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추격매수까

지 속속 이어진다는 소식이다. 개포주공이 1억 원 오르고, 둔촌주공이 5천만 원 올랐다는 식의 기사가 연

일 경제면의 헤드라인을 장식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 고개를 든 것이다.

 

재건축의 최대 걸림돌인 서울시와의 갈등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이른바 강남재건축 빅3인 개포주공,

가락시영, 둔촌주공의 재건축사업이 괘도에 올라섰다. 특히 지난 1월, 일반분양분이 1천 세대 늘어난 3종

변경 안이 통과된 둔촌주공의 사업성 대폭 개선 소식이 알려지면서 강남재건축시장 전체로 온기가 확산됐

다는 분석이다.

 

 취득세 감면안의 국회통과 소식에 이어 분양가상한제 폐지 법안에 대한 여야합의 소식이 잇따른다. 주택

시장 과열기에 도입된 분양가상한제가 정책 도입 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분양가상한제 폐

지를 계기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재건축초과이익환수 등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노무현 정권에서 만

든 대못들도 뽑힐 가능성이 커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새 정부의 부동산활성화 대책에 대한 기대감에 친 시

장 성향인 신임 경제부총리와 국토해양부장관 내정으로 더욱 힘을 싣게 됐다는 것이 주된 해석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 시절 대부분의 대못을 뽑고도 욕만 먹었다.

찔끔찔끔 대책으로 시장의 내성만 키웠다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무려 27차례의 크고 작은 대책을 내놓고도 부동산거래활성화는커녕 유래 없는 부동

산침체로 서민들 고통만 가중시켰다는 것이다. 대못은 뺐으나 핵심적인 대못을 빼지 못한데다 보금자리 같

은 악수를 둬 되레 시장을 망쳤다는 것이다.

 

 단기적인 일몰제 대책과 한시적 제도 운영 등 때를 맞추지 못한 정책운용으로 외려 내성만 키웠다는 얘기

다. 매번 뒷북치는 정책으로 신뢰를 잃고 가격회복 시기도 놓쳐 장기간의 침체국면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정부정책이 신뢰회복이 선결돼야하는 숙제이자 준엄한 반면교사인 셈이다.

 

 바닥 론에 힘을 싣는 이유는 더 있다.

세계 주요 국가들의 양적완화 경쟁에 주목해야한다, 미국과 유로 존 국가들에 이어 일본이 돈 풀기 정책에

나서면서 국내 부동산시장도 다시 부양할 수 있는 여건이 성숙된다는 이론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홍콩, 싱가포르, 독일, 말레이시아, 등에서 부동산 폭등세가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가

운데 미국도 반등에 성공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일본 정부가 양적완화에 돌입해 국내부동산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양적완화는 엔 케리 자금 확대로 이어지고 글로벌 경제 매

트릭스 내에서 한국으로의 자금유입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논리다. 실제 서방 유력 경제 전문가들의 “한국

경제, 인플레를 염두에 둬야한다”는 지적과 결코 무관하지 않는 얘기다.

  

 전세 값 급등도 뇌관이다. 서울일부지역의 전세 값이 집값의 80%를 웃도는 상황에서 매매수요로 전환될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실제 반포 등 12억 짜리 아파트 전세 값이 9억을 초과하면서 매매수요로 전환

했다는 소식과 서울 외곽과 수도권 일부 저가 아파트시장에서 전세를 찾다가 매매수요로 전환됐다는 소식

이 끊이지 않게 들리기 시작한다. 최근 둔촌주공 등 강남재건축의 부쩍 늘어난 매수세에는 이들 지역에서

집을 판 수요자가 매수세에 합류한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난 점이 이에 대한 반증이다.

 

 무엇보다 하우스 푸어의 해법마련을 위한 정부의 시장 활성화 대책이 시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자극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집값회복이 이들 문제의 근원적인 해법이라는 점에서 부동산시

장 부양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다소간의 인플레 유발 효과라는 부작용을

안고서라도 말이다.

 

 모처럼 바닥 론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무려 5천만 원이나 오른 매물의 거래가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다. 날개 돛인 듯은 아니라도 이제 겨우 새벽

별을 보기 시작한 바닥 론이 반색할 지경이다. 이참에 그동안 굴레처럼 씌워진 불신의 딱지를 떼어낼지도

모를 일이다.

 

 처음엔, 그러니까 지난 1월16일 종상향안의 서울시 통과 이후는 긴가민가했다.

워낙 지독한 침체에 지역적인 호재가 있어봤자 얼마나 효과가 있겠냐하는 표정이었다. 새 정부 출범으로

부동산활성화 대책이 예견되기는 했어도 어디 한두 번 속아 본 것도 아니지 않은가.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가는 버릇도 그렇게 몸에 밴 습성 아니던가 말이다.

 

 고작 1천만 원 오른 매물에도 주저주저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당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당

연히 “추격매수 절대금지”가 그들의 목표다.

 

 그보다는 집주인들이 압권이다. 물 만난 고기 마냥 신바람이 났다. 호가를 수천만 원씩 올리는 것도 모자

라 급한 마음이 싹 달아났다는 듯 매물을 걷어 들이기 일쑤다. 당시만 해도 드물기만 한 매수세가 슬쩍 간이

라도 볼 때도 가타부타가 없다. “설 쇠고 보자”는 한마디면 끝이다.

 

 그렇게 설이 지났다.

그리고 또 열흘이 지났다.

무려 5천만 원이나 오른 매물이 하루가 멀다하게 새 주인을 찾아 나간다. 그리고는 그 다음은 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모르긴 몰라도 팔린 가격보다는 최소한 1천만 원이라도 올려야 직성이 풀릴 것이다.

‘추격매수 절대금지’가 울고 갈 지경이다.

 

 바닥 론, 이참에 굴레를 벗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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