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슴푸레 먼동이 트기 시작한 새벽길을 달립니다.

스치는 바람결에, 눈에 밟히는 마다에,

아직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들판엔, 진한 가을 내음이 구석구석 빼곡히 박혔습니다.

상큼한 기운에 맑아진 머릿속이 새털같이 가볍습니다.

오늘도 잘 해야지.

다짐하는 마음이 각별하고 정성스럽습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걸려온 세통의 전화로 오전 시간이 훌쩍 달아났습니다.




오전 8시를 막 넘긴 시간, “너무 일찍 전화해서 미안해요.”로 운을 뗀 주인공은 4

단지 25평을 전세주고 반포에 사는 집주인 아주머닙니다. 재건축 완공 후 입주할 꿈

에 부푼 분이라 팔 생각은 전혀 없을 텐데도 집값이 떨어진다는 소식이 있기만 하면

어김없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분입니다. “지금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느냐” 는

게 늘 상 하는 질문이지만 늘 그 뿐입니다. 그러고는 가격이 조금 오르면 연락을 달

라면서 끊지만, 가격이 오를 때면 언제 그랬냐 싶게 시치미를 뚝 떼는 게 습관처럼

되어버린 분이기도 합니다.

30분이 넘게 이어진 전화는 역시 가격이 오르면 연락 달라는 말이 끝입니다.




2주 전 인터넷에 실린 글을 보고 전화 했다는 분도 4단지 25평 소유잡니다.

남편의 직장관계로 천안에 살고 있으며 집을 팔아 수익 형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다

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본인은 베이버부머 세대라는 얘기와 함께 둔촌주공아파트

가 유일한 노후 수단이라고도 했습니다. 가격이 떨어져서 팔기가 아깝기는 하지만 원

룸주택이 마땅한 게 있으면 팔고 갈아탈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마땅한 매수자가 있으

면 연락을 달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 어렵사리 마땅한 매수자를 구했다는 연락에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팔기를 보류한 그 분입니다.

조금 더 기다리면 가격이 오를 것 같으니 그때 가서 팔겠다는 이유에섭니다.

그러고는 2주일이 흘러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좀 어떠냐고. 가격이 더 떨어졌다는

소리에는 한참을 망설이고 걱정이 끝도 없이 길어졌습니다.

30분을 넘게 이어진 전화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역시 가격이 오르면 연락을 달라는

얘기가 끝입니다.




대뜸 시세를 묻는 전화는 사전 공부가 상당해 보입니다.

가장 큰 지분의 가격을 묻는 폼 새가 어지간한 내용은 다 아는 눈칩니다.

고점보다 1억이 넘게 떨어졌다는 데도 그리 놀라는 눈치도 아닙니다.

재건축 진행상황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 내내 간혹 던지는 질문은 간략하면서도 날

카롭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으니 허튼 수작은 아예 할 생각도 말라는 듯 묘한 압력

같은 게 짙게 깔렸습니다. 살 때냐 말 때냐 라는 말이 오갔고 급매물 기준으로 보면

8억도 안 되는 자금으로 45평을 사는 격이라는 설명에 투자가치는 있다 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은 건 전화통화를 시작한지 30분을 훌쩍 넘

겨 섭니다.




거래가 활발하게 살아나지는 않지만 문의는 늘었습니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소식에, 계산이 복잡해진 집주인들의 숫자가 훨씬 많긴 해도 매수

를 고려하는 숫자는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어제 오후는 다소 늦은 시간까지 제법 구

체적인 매수 문의가 이어지는 바람에 퇴근시간을 상당히 늦춰야 했을 정도입니다.




잠실주공 5단지가 10억 아래로 떨어졌다는 소식입니다.

잠실5단지 34평이 9억8500만원에 매매가 됐다는 소식이 뉴스 꺼립니다.

2008년 4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호들갑을 떱니다.

지난주만 해도 평균 10억~10억4000만원에 호가가 형성됐지만 이번

주 10억 이하로 떨어져서야 매수움직임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번 주 들어서는 총 6건의 매매계약이 체결되는 등 매수문의가 늘어났다는 얘깁니

다.




개포주공의 반짝 매수세로 호가가 2000만~3000만원 오른데 이어 잠실 주공5단지의

매매소식으로 일단 두 지역의 하락세는 멈춘 셈입니다.




난감한 것은 가격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매수세와는 달리 실상은 가격을 낮추면

서까지 팔겠다는 집주인들이 많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특별히 단지 내든 다른 지역이든 싸게 팔고 싸게 사서 갈아타려는 계획이 아닌 바에

는 가격이 바닥을 헤매는 지금시점에 굳이 팔 이유가 없다는 생각으로 심지어는 대출

이 많다거나 당장 자금이 필요한 경우에도 위의 집주인들에서 보는 것처럼 그다지 쫓

기는 모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급 급매물이라고 일컫는 저가매물이 6000세대 가까운 둔촌주공

에 기껏 3~4건이 고작인 형편으로 매수세가 붙어 그게

팔리고 나면 금 새 호가가 높아졌다느니 매물을 걷어 들였다느니 하는 소리가 나오

는 이유입니다.




신기하게도 강남권재건축은 일정한 툴이 있습니다. 개포주공이 오르기 시작하면 잠

실주공이나 은마아파트가 따르고 그 뒤를 둔촌주공이 따르고, 개포주공이 먼저 내리

기 시작하면 또 줄줄이 뒤를 따르는 그런 식입니다.




대체적으로 개포주공이 리딩히터 격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닙니다. 어느 때는 잠

실주공5단지가 앞장서기도 하고 때로는 둔촌주공이 앞에서기도 합니다.

늘 유기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를 유지하는 게 일반적으로 오래전부터 당

연하게 인식되어 왔던 현상입니다.




이번엔 개포주공이 시작했습니다.

개포주공이 앞장서고 잠실주공5단지가 뒤따랐고 둔촌주공이 따를 차롑니다.

45평 아파트를 8억 이하에 배정 받을 수 있을 만큼 가격이 바닥에 떨어졌으니 따를

준비는 마친 셈입니다.




다음은 둔촌주공 차롑니다.





[둔촌주공 동향 한줄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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