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내리는 비에는 각기 이름이 붙었습니다.

봄비, 여름비, 가을비. 겨울비 이렇게 말이죠.

이름이 제각각인 것처럼 같은비라도 느낌 또한 독특한 색깔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봄비가 내리고 나면 생동감이 더해지고 여름비가 내리고 나면 잠시 후련하

기는 해도 금 새 후텁지근해진다거나 가을비를 신호탄으로 날씨가 부쩍 추워지면서

성큼 가을이 깊어진다는,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겨울비가 내리고 나면 세상이 꽁꽁 얼어붙을 테고 말이죠.




빗물에 젖은 단풍이 아름답습니다.

몽환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깊어가는 가을 정취를 더합니다.

한층 싸늘해진 날씨가 오히려 가을을 고품격 럭셔리로 만듭니다.

매번 하는 말이지만,

가을날 아침은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무료한 일상의 연속입니다.

무료하지만 긴장감은 더하고 정신적인 피로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보다 더하

면 더했지 한 치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10월의 반이 당장 내일인데도 아직까지 감감 무소식입니다.

평상시엔 생각지도 못할 급 급매물이 속속 쏟아지는데도 거래가 성사됐다는 얘기는커

녕 변변한 흥정이 있었다는 소문조차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개포주공이, 잠실5단지를 비롯한 강남권재건축 아파트값이 형편없이 떨어진다 할

때도 그다지 걱정하는 빛은 없습니다.

머지않아 불길이 이쪽까지 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널렸는데도 짐짓 태평한척 표정

의 변화를 읽을 수가 없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덩달아 가격을 낮출 법도 한데도 묘

한 긴장감만 돌뿐 서둘며 내놓는 급 급매물 따윈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가 않습

니다.

“내가 다 해봐서 아는데..”하며 세상 모든 일은 다 통달한 것 같은 저 높은데 계시

는 어른 흉내를 내듯 뒷짐 지고 고개만 주억거릴 따름입니다.

“2008년 리먼 사태 때 경험할 만큼 다 해봤거든?” 하며 말입니다.




웬만큼 낮추면 팔리던 시장이 열흘이상 꿈쩍도 하지 않고 나서의 일입니다.

처음에는 1000만~2000만원 낮추다가 그래도 입질이 없자 아예 5000만이나 통 크게 낮

춘 급 급매물이 등장했습니다.

아무래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남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사태가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걸 뒤 늦게나마 깨달은 모양이지요.

그렇게 끌려나온 매물이 며칠 새 좀 과장되게 말하면 지천에 깔렸습니다.

그 중엔 1월 고점대비 1억을 훌쩍 넘긴 건 약과이고 2~3주 사이 5000만원이나 떨어

진 매물이 눈에 띕니다. 대체로 대형평형이 떨어진 폭이 크지만 여름 내 고작 1000만

~2000만원에서 왔다 갔다 하던 소형평형까지 그 대열에 슬며시 한발을 얹었습니다.




눈에 띄게 술렁이지는 않아도 업소마다는 제법 긴장감이 돌고 분주해졌습니다.

아직까지는 썩 내켜하지 않은 표정이 역력한 대기 매수자를 상대로 열심히 바닥투자

를 권유하는 모습이지만 선뜻 동조를 하고 나서는 이가 없다보니 힘만 몇 곱절 허비

하기가 십상입니다. 연말에 바닥을 친다는 연구기관의 전망치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

는데도 불구하고 캄캄한 어둠속에서 새벽을 예견하고 마음을 결정하기가 쉽지만은 않

아 보입니다.




앞장서서 곤두박질을 치던 개포주공에서는 급 급매물이 팔리면서 소폭 오름세까지

보인다는 소식입니다. 백척간두에 선 것처럼 위태위태하던 남유럽 위기도 어느 정도

돌파구를 찾는 모습입니다. 중국의 주가가 널뛰기를 한다는 소식이 개운치는 않으면

서도 전체적인 그림만큼은 안정 기조에 들어섰다는 해석이 주류여서 큰 고비는 넘긴

셈입니다.




지난날을 반추해볼 때입니다.

2008년 리먼 사태 때가 어땠는지,

지난해 봄부터 가을이 오기까지는 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그리고 다시 올 연초 반짝 하고나서는 길고 긴 속앓이를 어떻게 견뎠는지..

그리고 언제 추스르고 어떻게 일어섰는지.




어때요. 바닥 냄새가 솔솔 나지 않나요?





[둔촌주공 동향 한줄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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