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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위기 노후아파트] ② 전력 소비 20년새 17배 늘었는데 시설은 그대로

[연합뉴스 2021/11/16 - 조회:3426]

(서울=연합뉴스) 이슈&탐사팀 = 노후 아파트가 정전에 취약한 이유는 늘어난 전기 사용량을 자체 전력설비가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내 변압기 용량은 준공 당시 수준이지만, 가전기기 보급 확대로 전기 사용이 과거보다 크게 증가한 경우가 많아 과부하에 따른 정전이 심심찮게 찾아온다.용량이 큰 변압기를 새로 설치하면 해결될 일이나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정부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노후 변압기 교체비용 일부를 지원하고는 있지만, 장기수선충당금을 지출해 아파트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도 있어 영세 아파트로서는 그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전력에 따르면 서울시내 아파트의 세대당 연평균 전기 사용량은 1999년 191.22㎾였으나 2020년에는 3천381.11㎾로 약 17.7배가 됐다. 일평균으로는 0.5㎾ 수준에서 9.3㎾로 늘었다.전기 사용량 증가는 가전기기 보급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가전기기가 에어컨이다.한국전력거래소의 주택용 가전기기 보급 현황조사를 보면 가구당 에어컨 보급률은 1995년 0.13대에서 2019년 0.97대로 25년 만에 7.5배로 뛰었다. 산술적으로는 집마다 1대꼴로 에어컨을 쓰는 셈이다. 에어컨은 1대를 가동하는 데만 순간적으로 1.5㎾ 정도가 필요할 만큼 전력 사용량이 큰 기기다.이밖에 공기청정기, 의류건조기, 에어프라이어, 식기세척기, 인덕션 전기레인지 등 여러 종류의 가전제품이 새로 등장해 가정 내 전력 사용량을 끌어올리는 원인이 됐다. 특히 인덕션은 최대출력이 3㎾를 넘는 경우가 많아 기능을 제대로 쓰려고 별도로 전기 증설공사까지 하는 사례도 있다.이병준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 부하가 과거에 비해 크게 증가하고 있어 노후 아파트에서 정전 사고가 발생한다"며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서는 각 가구에서 소모하는 전력량에 맞는 용량으로 변압기 교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러나 노후 아파트 중 변압기 용량이 현행 법령에서 규정하는 최소 기준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곳도 많다. 1991년 제정된 대통령령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주택에 설치하는 전기시설 용량은 세대별 3㎾ 이상이어야 하나 이전에 지어진 노후 아파트 중에는 1㎾대에 불과한 곳이 많다.취재팀이 정전 사례로 살펴본 서울 강남구 아파트, 경기도 부천 아파트 등의 변압기 용량도 세대당 각각 1.7㎾, 1.3㎾ 수준이었다. 용량이 초과된 상태로 전기를 계속 사용하면 변압기 온도가 상승하다 결국 화재로 이어져 인명피해를 낼 우려도 있다.

◇ 변압기 교체비용 부담에 '잠재적 위험' 안고 살기도 아파트 정전을 방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지 내 변압기 교체다. 용량이 충분한 변압기를 새로 설치하면 전력 사용량이 일시적으로 폭증하더라도 부하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체 비용이 부담스러워 정전 위험을 안고도 변압기를 교체하지 않는 아파트가 많다.서해원 한국전기안전공사 서울동부지사 기술진단부장은 "일반 변압기가 2천만~3천만원대라면 고효율 아몰포스(Amorphous) 변압기는 대당 약 5천만~6천만원대"라며 "아파트 내 변압기는 1대가 아니라 여러 대여서 주민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통상 아파트에서는 노후설비 교체·보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비용을 장기수선충당금이라는 명목으로 관리비에 포함해 징수한다. 그러나 변압기를 교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민들은 말한다.인천의 한 아파트는 정전 후에도 장기수선충당금이 부족해 최신 고효율 변압기를 구매하지 못하고 종전에 쓰던 변압기와 같은 모델을 중고로 구해야 했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변압기가 옛날 제품이어서 같은 것을 찾느라 여기저기 수소문해야 했고 복구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다.부천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노후 변압기를 교체하고 싶어도 장기수선충당금이 없어 불가능하다"며 "지금은 승강기 교체가 시급해 관련 비용부터 모으는 중"이라고 말했다.정부와 한전은 이런 부담을 덜고자 노후 아파트로부터 신청을 받아 변압기 교체비용 80%를 지원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영세 아파트들은 자부담 비용 20%도 버겁다고 호소한다. 변압기를 교체하면 이와 연결된 케이블, 차단기 등 주변 설비 용량도 증설해야 해 추가 부담도 만만치 않다.한전 영업처 관계자는 "장기수선충당금이 부족해 사업을 신청했다가 취소하는 아파트가 상당히 많다"며 "추가 공사비용까지 생각하면 아파트 부담 몫은 20%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전기 설비 교체에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다 보니 주민 간 의견 충돌도 일어난다.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정전에 대비하려고 노후 변압기를 미리 교체하려고 하면 돈을 많이 쓴다고 반발하고, 사후에 하면 왜 빨리 안 했냐는 민원이 들어온다"고 했다. 또다른 아파트 입주민대표단 관계자는 "교체 매뉴얼을 지키면 그 사람은 대표 자리에서 금방 쫓겨난다"며 의견 조율이 어렵다고 전했다.
[※ 이 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 제4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 최우수작 「노후 아파트는 '정전'과의 전쟁 중」(서울여대 최지은·유경민·김유진·정윤경)을 재구성해 작성했습니다.]pulse@yna.co.kr<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1/11/16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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