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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과 대보름사이에 쓰는 목동편지


설을 쇠자마자 어머니는 설음식과 조청으로 만든 강정을 이런 저런 광주리에 담아 마루위 실겅이에 올려놓아 소년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맘때 촌놈들의 주전부리가 일 년 중 가장 풍성할 때입니다.

동구 밖에 친구들이 모이면 최고의 부러움은 오징어를 씹고 있는 녀석이었고 다음은 제사상에 올려졌든 위아래가 잘린 사과를 갖고 있는 녀석이며 최소한 강정 하나 정도는 손에 들고 있어야 하는데 맨손에, 맨입으로 친구들과 어울리기엔 어색하기만 했든 소년이 있었습니다.

분명 자신보다 못산다고 생각했든 녀석들인데 이맘때만 되면 소년이 헷갈릴 만큼 친구들과 자신이 주전부리에서 확연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우리엄만 쌀 강정하나도 못 먹게 할까?”
“우리엄만 정말 짠돌이”라고 원망하고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엄마 손이 커질 때가 있습니다.

이맘때가 되면 엄마는 마루위 실겅이에 있는 음식과 강정들을 커다란 보자기에 싸서 막내인 소년을 데리고 형과 누나들이 유학하는 대구로 가십니다.

소년에겐 그토록 아꼈든 설음식과 강정을 형들과 누나에게 갈 때면 큰 손으로 싸는 것을 보면서 엄마를 이상하게 생각했고 형과 누나들을 자신보다 훨씬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년의 대구행에겐 특별한 가슴 설렘이 있었습니다.

바로위 셋째 형이 한 번씩 데려가는 극장은 가끔씩 장터 우 시장에서 천막을 두른 가설극장과는 너무나 달랐고 극장을 가면서 보는 네온사인 불빛은 너무 신기하고 찬란했으며 입에서 녹아버리는 뜨거운“풀빵‘은 엄마가 그토록 아꼈든 설강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기 때문입니다.

형 둘과 누나 자식 셋이 공부하는 자취방을 엄마와 소년은 큰 보따리를 들고 찾아갑니다.

“우에 너그들은 공부 잘하나?...
“어데 아픈데 는 없고?.......

천정에 대롱거리며 춤을 추는 백열등 밑에 유학하는 자식들을 모아놓고 어머니가 하신 첫마디입니다.
작년 농사일과 집안 문제에 대한 얘기는 둘째형이 주도하고 시골 동네얘기며 이웃집 자식 얘기들은 누나와 엄마가 장단을 맞춥니다.

“우뜸에 (윗마을에) 복이 할매가 죽었데이....”

영악한 막내는 동네에 누가 죽었다는 얘기가 형과 누나들이 다 같이 놀라면서 큰 화젯거리가 되기에 사랑 받고 싶어 동네 초상집 소식은 소년이 전담했습니다.

누가 죽었다고 말만 해놓으면 형, 누나, 엄마는 한참동안 얘기를 나누다 결국 엄마가 눈물을 닦으면 초상집 얘기는 끝이 납니다.

“아이고! 우리막내 많이 컷네....”
한참 후에야 대학을 다니는 누나가 하는 말입니다.

이제부터는 올 농사가 중심이 되어 무슨 밭에 무얼 심고 무슨 밭에는 무엇을 심겠다는 농사계획을 얘기하며 늘 농사일 얘기가 마지막이 됩니다.

“너그는 우야든지 공부 열심히 하거라!”
“너그는 안 될 끼고 막내는 중학교만 시켜 농사 짖게 할 끼다!”
“애미가 올봄에 막내한테 딱 맞는 지게하나 맞춰 줄 끼다…….”

소년의 일생을 결정하는 엄청난 말에도 소년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중학생 형이 극장구경도 시켜주고 풀빵도 사줄까?
그래야 촌놈들께 몇 배 부풀려 자랑할 텐데…….

자취방엔 학생은 셋인데 책상은 두 개 밖에 없었습니다.
책상을 놓을 데가 없는 누나의 책상은 밥상이 대신했습니다.

송판으로 울타리를 삼은 긴 골목길을 “찹쌀떡 장수“의 외침소리가 들릴 때면 시골집 호롱불보다 백배나 밝은 백열등이 자동으로 꺼질 때쯤 4남매와 고단한 어머니는 잠자리를 준비합니다.

방 귀퉁이 옷상자와 이불들이 쪽마루로 나가고 방안 물건들은 책상위로 올려지면 다섯 식구들이 누울 자리가 만들어지고 형과 누나는 책을 베개삼아 이불두개에 다섯 식구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춥지만 춥지 않았고 어려웠지만 그렇지 않았든 자취방 식구들은 잠에 빠집니다.

다음날 어머님은 자식들의 빨래로 하루 일을 시작하여 온 방과 마루에는 형과 누나들의 옷들이 걸리고 나면 처마 끝에 걸쳐진 연탄불 냄비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볶는 어머니의 요리가 시작됩니다.

막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도 주지 않았든 오징어를 통째로 볶고 말린 생선들은 무조건 간장과 고추장에 볶아 여러 개의 병들에 담아놓았습니다.

소년은 엄마가 미웠습니다.
“엄마는 시골에선 한 번도 볶지 않더니 대구에만 오면 무조건 볶는다고”.

소년은 이제껏 어머니는 시래기 된장과 무밥 밖에는 할 줄 모르는 줄 알았는데.....

둘째 날 저녁은 첫날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첫날은 반가움과 만남의 기쁜 밤이라면 둘째 날은 장래 진로 문제로 의견이 충돌되고 목소리도 높아지는 긴장된 밤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누나가 있었고 가끔은 고등학생 형도 서 곤했습니다.
누구 집 아들이 중매가 들어왔는데 맞선을 보라는 엄마와 보지 않겠다는 누나…….

서울로 대학을 가겠다는 형과 안 된다는 엄마…….
이렇게 둘째 밤 분위기는 싸늘해지면서 말없이 잠자리에 들 곤했습니다.

“내일은 형이 극장엘 되려갈까?.....”
소년의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보자기들을 말고 입고 온 치마를 끈으로 동여매며 자식들께 당부와 격려의 말을 남긴 체 시골로 향합니다.

그래도 막내의 심정을 아는 중학생 형이 돌아서는 막내의 빡빡머리를 쓰다듬으며 “야 막내야 다음 여름 방학 때 오면 꼭 극장구경 시켜줄게”
“잘 가”........

비록 극장엘 가지 못해 친구들께 자랑거리는 줄었지만 그래도 대구간 자체가 부러움이고 버스도타고 자동차도, 높은집도 본 것만으로 소년은 친구들에게 충분히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시골이 좋았습니다.
낮에는 얼음을 지치고 밤에는 호롱불 아래서 양말을 깁는 어머니의 바늘귀에 실을 꿰어주고 친구들과 산과들을 벗 삼아 칼싸움도 하고 활도 만들고 연도 날리며 정원대보름이 맞이합니다.

시골의 설은 정월대보름에 끝납니다.
설 놀이나 새해 일가친척 방문을 정월대보름 까지 이며 이 날이 지나면 새해 농사일을 시작합니다.

어머니의 새해 첫 일은 객지로 유학 보낸 자식들을 둘러보며 한해의 농사일과 자식농사계획을 짜셨든 것입니다.

어머니가 그토록 아꼈든 오징어들은 볶아서 형, 누나들 도시락 반찬을 준비하셨고 설 강정 하나에 그토록 인색했든 어머니는 설 한 달 후에 있는 제사를 준비하셨고 간장, 고추장에 볶기만 한 것은 오랫동안 두고 먹이려는 어머니의 요리방법이었습니다.

한참 후 농사일을 시키겠다든 막내는 중학생이 되어 시집간 누나가 쓰든 밥상을 물려받아 자취방의 새로운 룸 -메이트 되었습니다.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는 이맘때가 되면 50줄을 넘어가는 철부지 소년은 옛날의 고향과 자취방이 더욱 선명하게 생각나는걸 보면 나이가 들어가나 봅니다.

그토록 가고 싶었든 극장엘 가렵니다…….
소년의 가슴을 울렸든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다시 보렵니다…….

부동산은 잠깐 쉬어가면서 이 글을 씁니다.
추억을 함께 하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2월말 목동 시세동향과 특선매물은 우리아파트 게시판에 올라있습니다.
              (2월26일 현재 계약분은 제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