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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곡식과 과실에 대한 배려 때문일 거야.

속이 꽉 차고 튼실한 결실을 맺게 하려는 속 깊은 생각이라는 거지.

아침저녁으로는 완연한 가을이면서도 한낮은 햇살이 뜨겁기까지 한 이유 말이야.

 가을은 참 모든 게 완벽할 정도라니까.

그 깊은 배려심이나, 시시각각 펼쳐지는 절절한 풍경이나,

뭐 어디하나 흠 잡을 데가 있어야 말이지.

 여름 그 지독한 말썽꾼하고는 근본부터 차이가 난다니까.

그래서 모두들 가을 가을하면서 가을노래를 달고 사는 게 아니겠어.

새파란 하늘에 삽상한 바람 한줄기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는데 말이야.

 둔촌주공 재건축이 중대 기로에 섰다.

보다 못한 주민들이 조합장과 끝장토론을 하자고 나섰다.

벌써 이주가 시작되어야할 재건축이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게 원인이다.

재건축이 제대로 가지 못하고 뒤뚱거리는 게 대체 무슨 연유에선지 시시비비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당초의 계획으로는 지금쯤 이주가 시작됐어야했다.

2010년 시공사 선정당시의 계획 말이다.

서울시의 정비계획 수정을 마무리하고 재건축에 박차를 가할 때라는 것이다.

시공사들의 호언장담하던 대로 무상지분율 164%의 계획이 서울시 도계위에 통과되고 그들의 말마따나 천

지개벽할 정도의 멋들어진 초현대식 아파트 조감도가 곳곳에 붙기 시작해야 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서울시다.

서울시가 소형주택 확대 등을 이유로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뜬금없는 특별건축구역 지정 카드를 새롭게 꺼내 들었다.

자칫 사업이 장기화할 우려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조합의 안이한 대처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는 지적이다.

소형주택 30%에 목을 거는 서울시의 심기를 건드려 복잡한 양상으로 치닫게 한 책임이 조합 측에 상당부

분 있다는 것이다. 딴에는 협상을 유리하게 하고자하는 의도로 제법 고단수를 쓴다는 것이 되레 역풍을 맞

게 됐다는 것이다. 개포주공 3,4단지를 비롯해 가락시영까지 30%룰에 백기를 들어 한창 기세가 오른 마

당에 강수로 몰아붙여 외려 궁지에 몰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기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특별건축구역의 취지 자체야 나무랄 게 없다.

창의적인 건축을 통해 도시경관을 향상하고 건축기술 수준을 높이기 위해 2008년 건축법에 신설된 제도

다. 동일한 용적률 아래에서 건폐율, 일조권 등 대부분 건축기준을 완화할 수 있게 돼 건축물의 배치와 조

경, 공지 등을 창조적으로 다양화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외려 둔촌주공 재건축을 도와주자는

취지의 제도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다시 시작해야하는 단점이 있다. 재건축 진행이 늦어질 우려가 적지 않다는 얘기다.

 조합측은 3종 종 상향과 현행 2종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다시 서울시와 협상하겠다는 것이

다. 3종 종 상향 조건으로 개발제한구역 및 저층 주거지와 연접한 지역에 대해 용적률과 층고를 낮추는 동

시에 중대형을 줄여 소형주택을 확대하는 내용과 현행 2종하에서 개발제한구역 및 저층 주거지와 연접한

지역에 대해 용적률과 층고를 낮추고 중대형을 줄여 소형주택을 확대하는 내용은 3종 종 상향 조건과 같이

하고 2종주거지역의 층고제한이 없어진 점을 활용해 35층 기준으로 단지를 구성하고 배치키로 한다는 내

용이다.

 이 같은 조치는 도계위로 하여금 3종과 2종을 비교 검토할 수 있도록 하고, 최악의 경우 빠른 사업 추진을

위해 2종 수정안으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속내를 담고 있다. 빠른 진행을 위해 도계위 소위가 권고한 특

별건축구역 지정은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

 뒤늦게 허둥대는 조합의 모습이 밉다 못해 안쓰러울 지경이다. 기를 쓰고 달음박질을 했는데 제자리로 돌

아온 느낌이다. 괜한 시간과 정력만 낭비한 셈이다.

처음부터 소형 30%를 수용하지 못하다 이제 와서 무릎을 꿇는 양상이다. 게다가 2종으로 원점회귀도 가

능성을 열어둔단다. 지난 연초 3종 추진을 위한 조합원 총회의 결과 따윈 이미 새카맣게 잊었다는 투다. 2

종으로 빨리 진행하자는 당시의 지배적인 여론을 3종으로 가야한다는 조합의 외침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데 말이다.

 길이 아니면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이 길이 아닌 가 벼”하고 사푼이 발길을 돌리기에는 영 찜찜하고 부글

부글 끓는 무엇이 있다. 조합원을 신주 모시듯 해도 모자랄 판에 길바닥에 내동이 친 것 같아 불쾌감을 지

울 수가 없다.

 대세는 2종이었다.

당시 조합원들은 현행 2종으로 빠른 진행이 대세였다.

현행 2종으로도 수익성이 나쁠 게 없는데 굳이 3종을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2010년 8월 시공사 선정이 끝나고 한창 물이 오를 때의 이야기다.

서울시의 종 상향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를 감안한 나름 현명한 선택은 그것이었다.

외려 조합과 시공사가 합작으로 종 상향에 대한 집착을 보일 때에도 혹 무슨 꼼수가 숨겨진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2종고수의 여론은 강했다.

 반전의 포인트는 서울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박원순시장 당선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가락시영 종 상향 결정이다. 느닷없는

결정이었다. 오세훈시장까지 부정적이던 것이 결정되는 바람에 그 속내를 두고 항간의 술렁임은 가히 폭발

적이다. 재건축에 부정적일 것이란 시각을 일거에 뒤집히면서 일대 회오리바람이 불 정도다. 여기에 힘입

은 둔촌주공도 종 상향을 추진하기로 했다. 조합 측의 적극적인 홍보 끝에 이루어진 조합원총회를 통과한

이후다. 종 상향은 맡아 논 밥상이라는 분위기에 강남권재건축시장은 다시 전성기가 찾아오는 듯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리 녹록치 않은 법이다.

재건축에 우호적일 것이란 새 시장은 금방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형주택 확대 권고로 시작된 재건

축에 대한 편협 된 사고는 절대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전임시장의 핵심정책을 하루아침에 물거품

으로 만든 그 옹고집으로 짐작컨대 강남권주택정책에 대한 그의 견해 또한 더 강하면 강했지 약해질 가능

성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서울시장 임기 다음으로 재건축을 미루는 게 어떠냐는 냉소적인 여

론도 적지 않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 왔다. 여간 맥 풀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외려 약

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수익성이 나빠질 거란 일각의 주장도 기우에 불과할 뿐이다. 애당초 2종으로도 충

분한 승산이 있다는 정평이 나있던 둔촌주공이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층고를 높이면 쾌적성을 높일 수 있

어 그 또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서울시와의 교감 여하에 따라서는 진행이 더 빨라질 길이 열릴 가능성도

높아졌다. 조합은 초심으로 돌아가 심기일전해야 된다. 물론 그동안의 안이한 대처에 대한 뼈저린 성찰이

있어야한다. 전화위복은 이럴 때 쓰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어젯밤 끝장토론의 취지는 그런 것이다.

 역시 명품은 불황에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모양이다.

주택시장침체에 내홍까지 겹친 둔촌주공에 벌써 몇 주째 거래소식이 그칠 날이 없다.

급매물이 동이 날 지경이다. 급매물이 동이 나자 일부 집주인들은 수천만 원 가격표를 올려달았다. 아직 그

가격에 따라갈 정도로 조급한 모습은 없지만 말이다.

 비단 세금 조금 깎아 준다는 이번 대책 때문만은 아닌듯하다.

7, 8월, 강남권재건축시장에 매수세가 씨가 말랐다는 그때도 둔촌주공 거래소식은 결코 중단되는 법이 없

었기 때문이다.

마치 명품에 대한 가치를 염두에 두고 반 토막이 나길 기다렸다는 투다.

항간의 바닥을 찍었다는 전망에 귀가 솔깃한 탓도 있을 것이다.

역발상의 지혜를 발휘한 투자자일 것이다.

그들이 굳게 믿는 말을 들어보자.

“늘 위기와 기회는 공존하는 법이다.”

[둔촌주공 동향 한줄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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